‘일회용 컵 보증금제’ 끝나지 않는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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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컵 보증금제’ 끝나지 않는 딜레마
  • 지유리 기자
  • 승인 2023.10.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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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지난해 12월, 제주도와 세종시에서 시범 운영된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전국 시행 대신 지자체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성과가 엇갈리면서 지자체별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자율에 따른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에 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무엇보다 환경보호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중장기 비전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의무화 대신 자율화
환경부가 2025년까지 전국에서 의무 시행하기로 한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3년간 두 차례 연기됐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 의무화를 사실상 철회한 것이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일회용 컵에 음료를 판매할 때 보증금 300원을 받고 컵 반납 시 돌려주는 제도다. 대상은 매장 100개 이상의 프랜차이즈 카페·베이커리 등 사업장이다. 애초 지난해 6월 전국에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던 자영업자의 반발이 커지자, 같은 해 12월 2일부터 제주·세종에서 축소 시행됐다.

환경부는 시범지역의 1년 성과를 토대로 전국 시행 시점을 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축소 시행 9개월 만에 ‘지자체 자율 시행’을 검토하면서 사실상 전국 확대를 포기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환경부는 가맹점주들의 상황과 지역 특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제도를 전국 시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10일 “전국에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의무화하기에는 사회적 비용 증가 등 무리가 따른다”며 “제도를 백지에서 검토하고 제주 등 지자체 특성에 따라 자율에 맡기는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국회에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지자체 여건에 맞게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내용의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행지역의 성과와 지자체 현장 의견 등을 바탕으로 향후 추진 방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올해 안에 전국 확대 시행 시기를 ‘3년 이내’로 명시한 고시를 개정해 ‘데드라인’을 삭제하고, ‘전국 의무 시행’을 명시한 현행법도 개정하기로 했다. 각 지자체 자율에 맡길 경우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에 소상공인들은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고 반기는 반면 환경단체는 반발하고 나섰고, 이미 시행 중인 제주와 세종시에서도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이미지 ⓒ www.iclick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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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로 본 제주vs 세종
세종시와 제주도에서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시행한 지 9개월 된 현재, 제주는 컵 반환율이 상승하고 있는 반면 세종은 6개월째 정체 상태를 보인다. 

지난해 12월 시행된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살펴보면 첫 시행인 2022년 12월, 제주의 반환량은 50,682개로 반환율이 10%에 그쳤다. 반면 세종은 반환량 35,190개로 반환율이 18%였다. 이후 제주는 올해 6월까지 반환율이 30%대를 오갔으나 7월과 8월 각각 53%, 64%로 뛰어올랐다.

반면 세종은 지난달까지 45%에 그쳤다. 관광객이 많아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정착이 어렵다고 평가된 제주에서 반환율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이는 지난 6월 7일부터 보증금제 미참여 매장에 과태료를 부과한 이유로 해석된다. 이에 지자체가 의지만 있으면 이행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서울환경연합은 “초반에는 혼란이 조금 있었지만, 컵 반환율이 올라가고 서서히 안착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시행 주체가 역할을 떠넘기면 당연히 제도는 자리 잡힐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녹색연합도 “일회용품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규제 권한을 자진해서 반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소비된 일회용 컵은 2018년 기준 연 294억 개다. 코로나19를 지나며 일회용 컵 사용량은 더욱 증가했다. 현실적으로 일회용 컵 사용 자제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3년간 약 240억 원의 예산을 쓰고도 보증금제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거센 상황이다. 대다수 시민이 일회용 컵 보증금제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어 환경부가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포기할 경우 무책임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범 사업 과정에서 소비자나 점주의 불만이 높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 설문조사 결과 소비자 70% 이상이 제도 시행에 찬성한다”며 “점주들도 불편함에 대한 불만은 있지만 제도 시행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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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재활용법 개정안’ 발의
환경부가 언급한 국회 발의 법안은 국민의 힘 권명호 의원이 발의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이다. 법안은 대상 사업자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종·규모로 지정한 것에 대해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도·특별자치도 또는 시·군·구의 조례로 정하는 기준과 지역으로 변경한 내용을 담고 있다. 소상공인 부담과 제도 미적용 매장과 형평성이 개정안 발의 이유다.

지금까지 환경부는 “지자체에 단속 권한을 줬음에도 환경 단속을 소홀히 해 불법이 만연했고, 이에 단속을 강화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2003년 시행된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기업의 자발적 협약에 따라 운영됐지만 낮은 반환율, 미반환 보증금의 처리 문제 등으로 효과가 미비했다.

그래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법률에 근거를 마련하고, 미반환보증금의 운영관리를 투명하게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제도의 핵심이었다. 2020년 자원재활용법 개정 당시에는 일회용 컵을 다량으로 배출하는 사업자의 재활용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내용으로 해당 사업자를 대통령령으로 업종과 규모를 정했고, 전국에 적용되도록 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10일 전국적으로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시행돼야 했지만 식음료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와 여당이 코로나19로 경기침체와 부담을 이유로 반발해 제도 시행이 6개월 연기됐다. 

 

반발하는 제주
오영훈 제주지사가 지난달 18일 오전 9시 도정 현안 공유 티타임을 주재한 자리에서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를 폐지하려는 법률 개정안 발의와 관련해 “제주도민과 공직자, 점주들의 노력과 참여로 환경을 지키기 위해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 대한 반환경적 시도에 분노하며, 이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오 지사는 “특히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지방자치단체가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를 자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법률 근거를 포함한 것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한다”며 “제주도 차원에서 국회와 환경부에 법률안 개정에 반대 입장을 명확하게 제시할 것”을 지시했다.

양재윤 제주도 기후환경 국장은 “일부 가맹점에만 제도가 적용되면서 형평성과 실효성 문제가 지적되는 만큼 조례로 보증금제 적용 대상 매장을 확대하는 ‘자원재활용법 시행령’ 개정이 오히려 시급한 상황”이라면서 “제주도는 시행령이 개정되는 대로 보증금제 의무 대상을 기존보다 확대하고 공공반납처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매장에서 일일이 라벨을 구매해 등록하고 부착하는 방식도 환경부와 협의해 보완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점주의 입장
점주 입장에서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의 가장 문제를 형평성과 관리의 문제를 지적한다. 시행 대상이 모든 카페가 아닌 가맹점 100개 이상의 규모가 있는 카페에서만 시행했다. 이에 따라 컵 반환이 귀찮은 소비자의 경우 아예 보증금제가 없는 카페를 이용했다.

제도를 따르는 점주들은 보증금제를 안내하면 고객이 난색을 보이며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반환된 뒤에는 카페의 불편함이 남았다. 카페의 경우 자신의 점포에서 판매한 컵이 아닌 컵 역시 세척해야 했고, 반납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이 필요했고, 이에 따른 인건비와 세척 비용을 카페 점주가 지불해야 했다.   

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가맹점주는 “재활용할 수 있는 전용 컵과 바코드 스티커 등을 사는 데에만 수백만 원이 들었다”며 “매장에 재활용 컵을 둘 곳도, 세척을 할 인력도 부족했었는데 폐지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한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점주의 경우 “개인 카페까지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며 “다회용 컵의 경우 반납이 번거롭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300원 더 비싼 음료를 마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미지 ⓒ www.iclick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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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사례
독일의 프라이부르크(Freiburg)시는 ‘프라이부르크 컵’ 제도를 이용 중이다. 100개의 카페에 일회용 뚜껑이 있는 플라스틱 커피 컵을 1유로에 대여하고, 반환 시 다시 돌려준다. 전체 카페 중 70%가 참여한 이 제도에 사용되는 컵은 최대 400번까지 재사용이 가능하다. 컵 내부는 재사용과 식기세척기 사용이 가능하게 제작됐다. 이러한 장점으로 프라이부르크 컵은 약 85%가 반환되어 세척 후 재사용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라떼 부담금’ 제도가 있다. 2018년부터 <스타벅스>에서 일회용 컵 하나당 5펜스씩 가격을 부과하고 있다. 대신 개인 컵이나 텀블러를 사용하게 되면 25펜스를 할인받을 수 있다. 영국에서는 연간 약 25억 개의 일회용 커피 컵 쓰레기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제도 도입으로 영국은 2042년까지 25년간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두 없앤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은 주에 따라 다양하지만 200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플라스틱 가방이 금지된 것을 계기로 2014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소매점에서 플라스틱제 일회용 봉투를 금지하는 법률이 성립됐다. 이어 2019년부터 일회용 빨대가 폐지되고 위반시에는 벌금이 부과됐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뉴욕, 워싱턴 DC, 보스턴 등 주요 도시가 환경보전에 노력을 주도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6년 일회용 식품 용기의 제조 및 판매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법률로 일회용 식기는 가정에서 퇴비화할 수 있는 바이오플라스틱을 50% 이상 포함한 소재로 만들어져야 하고 2025년까지 그 함유량을 60% 이상 포함하는 것을 법으로 지정했다. 

 

촘촘한 정책 위한 법 개정 필요 
이번 환경부의 결정은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세종시와 제주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간 환경부의 명확하지 못한 정책 노선 역시 여전한 문제로 남았다. 제도 시행에 있어서 사각지대가 발생한 것에 대한 보다 꼼꼼한 실태조사가 필요했다. 환경문제는 결코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 채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일회용 컵 사용 줄이기는 2003년 3,500여 개의 패스트푸드점 및 커피전문점과 일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었다. 일회용 컵 한 개당 50~100원의 보증금은 음료를 구매한 매장에 반납해야 받을 수 있었다. 컵 반환율이 40%가 채 되지 않아 제도의 실효성 문제가 불거졌고, 미반환 보증금이 기업의 판촉 비용, 홍보비 등으로 사용되면서 미반환 보증금 사용 용도의 부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후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자발적 협약으로 진행돼 보증금 반환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제도를 폐지했다. 이후 일회용 컵 사용량은 매해 급증해 2020년 자원재활용법이 개정됐다. 이미 매장 내에서의 일회용 컵 사용은 금지된 상황에서 포장 주문 시 발생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의 회수는 매우 미미한 상황이고, 거리에 방치된 일회용 컵은 쓰레기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 환경부가 일회용 컵 보증금제의 전국 시행을 하지 않는다면 감사원의 결과를 뒤집어야 하고 법을 개정해야 한다. 플라스틱 줄이기는 세계적인 협약이자 시대적 흐름이다. 이에 환경부는 자원순환 정책에 따른 보다 적극적인 이행과 이에 따른 철저한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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