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와 무지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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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와 무지의 공존
  • 창업&프랜차이즈
  • 승인 2017.08.1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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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당수 보험설계사들은 상품 자체에 대한 이해와 가치관이 부족한 상태가 많다. 그리고 이는 보험설계에 무지할 수밖에 없는 고객과 만남을 통해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사기꾼과 희생양이란 이름으로 남게 되고 만다.

 

나쁜 꾀로 남을 속임. 아는 것이 없음. 무엇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가? 속이는 것이 나쁠 때도 있을 것이고, 아는 게 없는 것이 더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다. 법적으로 볼 때 남을 속이게 되면 처벌을 받지만 아는 게 없다고 처벌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모름으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거나 처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경우는 차치하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내가 속았다
필자는 보험설계사다. 속칭 보험쟁이이자 보험을 판매함으로써 그 판매수수료를 급여로 받는 사람이다. 필자의 글을 계속 본 사람들은 알 수 있겠지만 필자는 다른 설계사들과 상당히 다른 설계를 한다. 설계를 하기 전 항상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상담 받는 사람들의 기존 보유보험을 파악하는 일이다.

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70% 이상이 고객의 의도와 상황에 전혀 관계없는 설계이며 이 역시 피상담자가 대부분 동의를 하곤 한다. 길을 잘못 들었으면 돌아와서 다시 찾아서 가면 되고, 실수를 했으면 다시는 안하면 된다. 하지만 상담을 하며 이런 내용을 피상담자가 알게 됐을 때의 반응을 살펴보면 ‘사기’를 입에 올리는 상황이 의외로 굉장히 많다. 믿었던 지인이 자신에게 사기를 쳤다며 분개하기도 하고, 그 사람이 왜 나에게 이런 설계를 했는지 의아해 하기도 한다. 생각의 시작은 여러 갈래이지만 결론은 하나로 다다른다. 바로 내가 ‘속았다’이다.

길을 가다 물건을 샀는데 그 물건이 내가 생각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거나 금세 망가져 버리면 우리는 욕 한번 하고 말 것이다. 그럼 그렇지 하며 별 정신적인 데미지 없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보험에서는 이게 좀 이상한 결과를 낳게 된다. 믿었던 사람이 나를 배신해버린 것이다. 단순히 상품을 해지하고 새로 가입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나에게 그 보험을 권했던 그 사람과의 관계가 붕괴되는 것이다. 내가 원치 않았던 보험을 가입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 상품을 권한 설계사는 나를 속인 것이며, 나는 보험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당해버린 상황이 되어버렸다. 즉, 설계사는 나에게 사기를 쳤으며 나는 무지해서 당한 것이다. 사기와 무지가 공존하는 순간이다. 

 

무지와 무지의 만남
또 다른 순간을 찾아보자. 과연 그 설계사는 나에게 사기를 친 것일까?
사기의 가장 큰 전제는 사기를 치는 그 사람이 상대방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인지에 의지를 더해서 상대방을 유린하는 것이다. 이 설계사는 이 관점에서 정말 가입자를 유린했을까?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바로 여기에서 또 다른 공존의 순간이 발생한다.

보통 보험사에 새로 입사를 하는 설계사들은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수개월의 교육을 받고 실전에 투입된다. 이때 대부분 ‘지인영업’을 시작하는데, 가족에서부터 친한 친구로 점점 친밀도가 떨어지는 시장으로 조금씩 진입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다. 생전 해보지 않은 분야의 일을 시작하는데 어떻게 한 달의 교육만으로 실전에 투입이 가능할 수 있을까? 

보험사의 신입교육의 대부분은 쉽(ship)교육에 할애된다. 그 외엔 얼마의 상품을 팔면 얼마를 얻을 수 있다는 돈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며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물론 상품교육도 하기는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 상품교육의 대부분은 회사에서 정해준 판매스킬과 방법, 그리고 롤플레이(Role play)이다. 쉽게 말해 신입사원은 이렇게 상담하고, 주부는 이렇게, 외벌이 가장은 이렇게,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은 이렇게 말하면 된다는 스크립트를 주고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머릿속에 익히게 만든다. 어쩔 수 없기도 하다. 

한 달 만에 실전에 투입돼 돈을 벌어 와야 하는 입장에서 그들에게 아주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얼마나 집어넣을 수 있겠는가. 이러니 성공(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돈’이다)의 부푼 꿈을 안고 말하기 편한 가족 및 지인들을 찾아가서 배운 스크립트를 열심히 이야기할 뿐이고, 그 초보의 이야기를 듣는 이 상황이 조금은 낯선 잠재고객들은 그 초보가 고수가 되는 과정에 도움이 되고자 그가 하는 이야기보다는 지금까지의 인정과 믿음을 바탕으로 청약서에 서명을 한다. 이렇게 가입한 상품이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상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정말 나는 사기를 당한 것일까? 필자는 이 상황은 무지와 무지가 만난 상황이 아닐까 싶다. 나의 무지와 그의 무지 모두 탓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그런데 이 설계사의 무지가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경우가 꽤나 많다. 회사에서 제시하는 상품교육만 그대로 믿고, 정작 그 상품이 필요한 사람과 상품 자체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 따위는 전혀 없으며 상품 외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부류이다. 

그러니 새로운 상품이 나왔다고 하면 회사에서 준 내부 교육자료를 들고 여기저기 끝내주는 상품이 나왔다며 들쑤시고 서로 불편해지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들은 무지가 계속 되는 케이스 이지만 사실상 이정도 되면 과실은 상당하다고 판단된다. 무지가 죄가 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마저도 무지해서 자신이 그런 상황인지 모르고 계속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고객은 당연히 무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알 수 있는 거라곤 설계사들이 제시하는 자료뿐이고, 그 안에서 자신에게 맞는 제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럼 여기서 정말 중요해지는 부분은 바로 그 제시된 자료들이 얼마나 객관적이며 올바르냐이다. 자신이 무지한지도 모르고 계속 무지의 탑을 쌓은, 업을 영위한 시간만 흐르면 자칭 전문가라는 그 무책임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그런 설계사와 무지한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는 고객이 만난다면 서로의 무지는 같은 무지가 아니게 된다. 

한쪽은 사기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고 한쪽은 그 사기의 희생양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이 상황에서 누가 올바로 서야겠는가? 답은 정해져 있지 않나.

 

 

강경완 W에셋 지점장은 국민대학교 마케팅학과를 졸업하고 여러 언론사와 각종 강의를 통해서 솔직하고 정확한 금융의 이면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뜬구름 잡는 기존의 재무설계에서 벗어나 삶을 가장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실질적인 재정설계 상담을 하고 있으며 이패스코리아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mail koolnjo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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