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CEO들에게는 저마다의 관찰자적 마인드가 있다! 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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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CEO들에게는 저마다의 관찰자적 마인드가 있다! Ⅲ
  • 김성배 기자
  • 승인 2016.12.19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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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CEO를 들여다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평소 생활 습관, 독서 방식, 지인들과 교류하는 태도, 경영 방식, 직원과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 등에서 자신의 일관된 부분이 있고, 그게 결국 종합돼 표출되는 게 ‘성공’이라는 값진 열매다. 자기만의 영역에서 성공을 거둔 CEO들은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력을 지니고 있고 디테일한 관찰습관을 견지한다. 생활 속에서 보석같이 탄생하는 사업적 아이디어는 바로 그러한 관찰자적 마인드에서 비롯된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장을 관찰하는 습관이 큰 결과를 불러온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이석구 대표

<스타벅스>가 고공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출범 18년째인 올해 매출 1조원과 매장 1000개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스타벅스>는 지난 2007년에 이석구 대표 체제로 재출범한 뒤 국내 커피업계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1999년 한미합작사로 조그맣게 출범한 <스타벅스>가 지금과 같은 성장을 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출범 첫해엔 매장 1개, 직원수 40명, 매출 6억원에 불과했지만, 9년째이자 이 대표 취임 첫해였던 2007년에는 매장 232개, 매출 1344억원으로 몸집이 커졌다. 이석구 대표 취임 10년차인 올 연말 매장 수는 1000여개, 직원 9600여명, 매출 1조원대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삼성맨 출신인 이석구 대표는 현장에서 날카로운 관찰력이 돋보이는 CEO로서 이름이 높다. 그는 무엇보다 현장 경영을 중시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철저히 실천하는 CEO로 명성이 높다. 이는 취임 이후 5000번 이상 매장을 직접 방문해 직원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 고객불편의 해답을 현장에서 찾아온 데에서도 증명된다. 현장에서의 날카로운 관찰을 통해 이 대표는 사업적 아이디어를 얻고 나아갈 비전을 찾는다. <스타벅스>는 모든 임직원을 ‘파트너’로 부르고 임직원이 사내에서 딱딱한 직급 대신 닉네임 호칭으로 소통하는 평등한 조직문화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석구 대표의 현장 관찰은 사업적 다각화도 불러오고 있다. <스타벅스>가 최근 커피뿐만 아니라 차(茶)사업에도 본격화에 나서고 있는 것도 그런 결과이다. <스타벅스>는 차음료 브랜드인 ‘스타벅스 티바나’를 전국 매장에 선보였다. 그동안 계절 한정 상품으로 내놓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브랜드를 론칭해 고객들의 다양한 기호를 만족시켜준 것이다. 이 대표의 현장 중심적 경영이 <스타벅스>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스스로의 능력을 관찰하는 CEO”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지난 1957년 일본 남단 규슈 사가현의 무허가 판자촌 지역에서 재일한국인 3세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식민지 시절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와 광부로 일했는데,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손 회장은 할머니의 리어카를 타고 음식 찌꺼기를 모으며 자랐다. 다행히 아버지 사업이 성공하면서 유복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지만 ‘조센진’이란 놀림과 차별은 계속되자 반드시 1등을 해서 성공해야 한다고 결심했고, 일본인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능력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게 되었다. 이후로 공부와 사업 모든 면에서 그가 1등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1974년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손 회장은 월반을 거듭해 한 달 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캘리포니아주 UC버클리 시절에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전 시간을 공부에 투자했는데, 당시 손 회장은 자신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관찰하는 습관을 처음 갖게 되었다. 당시 외국어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번역이 되는 음성전자번역기 아이디어를 샤프전자에 팔아 1억엔(약 10억원)을 번 손 회장은 친구와 함께 <유니손월드>라는 벤처기업을 세우기도 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손 회장은 1981년 일본으로 돌아와 19세에 세운 ‘50년 인생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한다. 그의 인생계획은 20대에 이름을 떨치고 30대에 1000억엔의 운영 자금을 마련하고 40대에 승부를 걸고 50대에 사업을 완성하고 60대에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것이었다. 
세계 최대 컴퓨터 관련 출판사인 미국 지프데이비스, 야후 등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던 손정의 회장은 2000년대 들어 닷컴 붕괴로 어려움을 겪자 야후 주식을 매각하고 일본텔레콤을 인수해 유선전화사업에 뛰어들어 다시 성공을 거둔다. 손정의 회장은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물러날 준비도 하고 있다. 60대에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주기 위한 후계작업도 동시에 진행 중인데, 지난 2010년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만들어 <소프트뱅크>의 후계자, 관계사들의 리더를 육성하기 위한 조직으로 회사 안팎에서 선발한 인재들을 교육하고 있다. 손 회장은 스스로의 능력을 관찰하고 길을 열어 성공한 CEO다.


“세상을 관찰하는 힘이 성공을 부른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경영 전문가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일과 인생에 대한 대단히 스마트한 접근을 이루고 있는 CEO라고 분석하고 있다.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창조해 내고 이를 통해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는 힘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인 것이다. 
빌 게이츠는 변호사인 아버지와 금융기업과 비영리 단체의 이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나 10살이 되기 전에 백과사전을 독파한다. 훗날 자신의 영광을 동네 도서관으로 돌린 바 있는 빌 게이츠는 13살 때 졸업생의 4분의 1 이상이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는 시애틀의 사립학교 레이크사이드스쿨에 진학했다. 이때부터 컴퓨터에 두각을 드레번 빌 게이츠는 19살에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자본금 1500달러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다. 이 자본금이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포커를 해서 모은 돈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1990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3.0을 내놓았다. 프로그램 관리자와 아이콘의 구실이 강화되고 파일 관리자를 새로 선보였고, 윈도우즈용 프로그램이 대거 등장하면서 PC 운영체제 시장의 확실한 강자로 등극했다. 1993년 5월 윈도우즈NT, 1994년 8월 윈도우즈95가 속속 출시됐다. 윈도우즈95는 PC 운영체제의 명실상부한 대표주자가 됐다. 1998년 윈도우즈98, 1999년 윈도우즈98SE, 2000년 윈도우즈ME, 2000년 윈도우즈2000, 2001년 윈도우즈XP는 <마이크로소프트> 제국의 확장사다. 
현재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적인 기업으로서 전세계의 정보 통신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세상을 관찰하는 뛰어난 능력으로 트렌드를 읽고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발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경영 전문가들은 빌 게이츠의 장점으로 항상 배운다는 면을 들고 있다. 빌 게이츠가 하버드대를 중퇴한 이유는 폴 앨런과 힘을 합쳐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릴 절호의 시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물론 대학을 그만두고도 빌 게이츠는 다양한 강의를 들었다. 리즈 대학을 중퇴한 뒤에도 계속 학교에서 강의를 들었던 애플사의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와 비슷한 면이 있다. 또한 빌 게이츠는 엄청난 독서광이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신뢰하는 CEO다. 이는 그가 평소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고, 그 안에서 어떤 삶이 성공을 향해 가는 삶인지 통찰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세상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힘, 그 힘이 바로 빌 게이츠가 성공 할 수 있었던 이유다.

 

“실패에서 성공의 힌트를 얻는 관찰의 힘”
<알리바바> 마윈 회장

지난 1999년 <알리바바>를 창업해 시장가치 242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기업으로 키운 마윈 회장은 중국 대륙에서 신화적인 존재다. 키 162cm, 평범한 외모에 뒷배경도 없었던 시골 영어교사 출신인 그는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회사를 키워왔다. 중학교와 대입에 세 번이나 떨어졌고 취업에 30번 낙방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그러한 실패에서 성공으로 향할 수 있는 힌트를 얻도록 끊임없이 관찰하고 탐구했던 자세가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었다. 
영어 교사였던 마윈(馬雲)이 중국 제조업체와 국외의 구매자들을 위한 기업 대 기업(B2B) 사이트(Alibaba.com)를 개설한 건 지난 1999년이었다. 2000년도에 일본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했고, 2003년에는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타오바오(淘寶)를 개설,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으며 그 영향으로 미국 이베이(Ebay)가 2006년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2004년에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Alipay)를 설립했으며 2008년에는 세계적인 제품을 중국 소비자가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사이트인 티몰을 열었다. <알리바바>는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약 8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마윈 회장은 최근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새우잡이로 돈을 번 검프의 예를 들며 자신이 고래보다는 새우를 잡는 경영 방법으로 성공을 위한 길을 걸어왔다고 강조했다. 이는 스스로를 낮추고 조금씩 일신우일신하는 경영 전략이 시장 위험성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튼튼한 내실을 갖출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알리바바>는 모바일 운영체제(OS) 분야에서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자체 개발한 OS를 탑재한 스마트폰 출하량이 1억대를 넘기면서 조만간 애플의 iOS를 제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중국 모바일 OS 분야 1위는 안드로이드다. 윈OS가 채용된 스마트폰 출하 대수가 올해 1억원대로 추정돼 중국 내 전체 스마트폰에서 14%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윈OS는 <알리바바>가 리눅스를 기반으로 개발해 지난 2011년 출시한 시스템이다. 출시 초기에는 안드로이드의 위세에 눌려 OS를 탑재할 스마트폰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알리바바>는 지난해 5억 9000만 달러(약 6500억원)를 들여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메이주를 인수하고 윈OS를 장착한 스마트폰 제작에 나섰다. 이를 통해 윈OS가 본격적으로 시장 경쟁에 뛰어들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실패에서 성공을 위한 전략을 찾기 위해 늘 세상과 자신을 관찰하는 CEO다. 그의 눈부신 성공은 결코 우연에서 얻어진 게 아니다. 

 

“현실의 오류를 발견해내는 관찰력이 성공을 부르다”
<자라>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은 지난 1936년 3월 스페인의 중소도시 레온에서 가난한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 북서부의 궁핍한 시골 지역인 갈리시아 지방으로 이사했지만 가정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중학생이던 13세에 학교를 자퇴할 수밖에 없었다. 소년 오르테가는 동네 옷가게에 배달원으로 취직해 푼돈을 벌기 시작했다. 
명석한 두뇌를 지닌 오르테가는 옷가게 주인의 운영 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고작 시골 농민을 대상으로 싸구려 옷을 팔고 있는데 생산과 유통 과정이 너무나 복잡했기 때문. 원단을 원단 생산업자가 아니라 중개상을 거쳐 사들이는 것도 번거로워 보여서 자신이라면 이런 복잡하고 낙후된 생산 및 유통과정을 개선해 더 빠르고 더 값싸게 옷을 만들어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옷가게 점원으로 13년을 일한 오르테가는 26세가 되던 지난 1972년 갈리시아 지방의 소도시 라 코루냐에서 약혼녀와 함께 옷가게를 처음 열었다. 오르테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중개상을 거치지 않고 원단업자에게 직접 소재를 구입한 것이었다. 원단 구매, 옷 제작, 완성품 옷 판매 과정에 지나치게 많은 중개상이 개입한 탓에 제작기간과 비용이 늘어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인데, 지금 이 순간 가장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이지만 한철 입은 후 유행이 지나면 미련 없이 버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 가격이 저렴한 옷, 즉 맥도날드 햄버거와 같은 옷이라는 의미의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 탄생하게 됐다.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신제품이 신속하게 출시되자 오르테가의 가게는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그의 옷가게는 스페인은 물론이고  이웃나라 포르투갈, 미국, 프랑스, 멕시코, 그리스, 벨기에, 스웨덴 등에 잇따라 진출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겨냥했다. 
SPA 브랜드의 핵심은 기획 및 생산, 유통의 통합이다. 옷을 디자인한 후 생산 작업에 들어가고 그 이후 유통에 나서는 게 아니라 옷의 기획, 생산, 유통을 동시에 진행하는 작업으로서 <자라>는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매해 1만1000종의 신상품을 선보인다. 제품 교체 주기도 2주 정도에 불과하고 새로 나온 옷이 며칠간 잘 팔리지 않으면 아무리 생산비가 비싸도 매장에서 가차없이 빼고 추가 주문을 모두 취소한다. 그러고는 유행에 맞는 상품을 새롭게 만들어 신속히 제공하니 제품의 종류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오르테가 회장의 이러한 성공은 일상의 오류를 이겨내려는 관찰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경영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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