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7호점. 행운의 샷을 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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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7호점. 행운의 샷을 날립니다
  • 임나경 기자
  • 승인 2013.12.13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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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다>합정자이점 김현아 점주

7’이라는 숫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운의 숫자로 불린다. 때문에 사람들의 비밀번호나 전화번호, 하물며 자동차 번호판까지 7이라는 숫자는 인기폭발이다. ‘창업’이라는 두 글자는 설레임을 동반한 두려움의 존재다. 미지의 세계다. 하지만, 여기에 7호점이라는 타이틀이 얹어져 이들에게 든든한 정신적인 지원군이 되기에 충분하다. 돈독한 사제의 인연, 금실 좋은 부부, 믿고 의지하는 부녀, 꿈을 좇으며 창업에 강한 자신감을 내보이는 당찬 여장부와 청년……. 이들에게 7호점이란, 자신들의 꿈을 이루게 하는 최고의 파트너다. 그래서 창업이 더욱 즐겁다.


다시 찾고 싶은 맛집이 될래요!
<담다>합정자이점  김현아 점주

‘놀부’라는 이름 하나 믿고 문을 열었다는 맑은설렁탕 <담다> 합정자이점 김현아 점주는 어머니와 함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오랜 외식업 운영 경험을 가진 베테랑으로, 딸과 함께 놀부에서 성공의 또 다른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엄마와 딸이 티격 티격하면서도 서로에게 더할 수 없는 조력자가 되고 있음에 그 무엇보다 든든하다.   글 임나경 편집장  사진 박세웅 팀장, 윤동훈 기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사장님이 되다
추운 겨울 따뜻한 맑은설렁탕이 인기가 좋다. 지난 11월부터는 부쩍 매출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기 전날은 새벽부터 전 직원이 나와 90명 가까운 단체고객의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부산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고객이 자신들의 가게를 찾아와 주고, 한 번 왔다갔던 고객이 다시 가게를 기억하고 찾아와주는 것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 오히려 손님이 없으면 더 지친다는 그녀. 벌써부터 점포를 운영하는 점주로서의 마음가짐이 당차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던 김현아 점주. 주로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은 그녀에게 즐겁고 보람된 일이었다. 10년을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생활하다 보니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고, 자신이 직접 가게를 운영해 보고 싶었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점포를 운영하던 것을 옆에서 봐왔기 때문에 더욱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담다>로 배운 설렁탕 맛과 서비스
“평소 설렁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설렁탕 맛을 잘 몰랐죠. <담다>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설렁탕을 먹기 시작했죠. 이곳 설렁탕 맛에 길들여지다 보니, 이젠 다른 집 설렁탕은 못 먹겠어요.” 다른 집 설렁탕 맛과 확연한 맛의 차이를 느끼면서 <담다>에 대한 자부심도 더욱 생겨났다. 점포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고객들이 그냥 밥 먹으러 오는 식당이 아닌, 뭔가 특별한 맛집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래서 고객을 응대한다거나 포장을 해도 뭔가 다른 집과는 사소한 것이라도 더 배려하고 신경을 썼다. 일행을 기다리는 어르신을 위해 따뜻한 차 한 잔 대접한 것에 감동해 과일박스를 보내오는 단골고객도 생겼다. <담다>에 오면 ‘대접받는 기분’이라는 고객 얘기에 김 점주가 오히려 감동했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혼자만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체득했다. 처음엔 혼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충만했지만, 할수록 힘든 일이 ‘외식업’임을 깨닫는다. 점포 운영에 오랜 내공을 지닌 어머니의 힘이 아니었더라면 엄두를 못 냈을 일이었다.   

고객과 함께 나누는 공간 되고파
모녀는 ‘놀부’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 때문에 <담다>를 시작했지만, 개인 점포를 운영하다가 프랜차이즈에 적응하는 것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 손님만을 생각하다 보니 때론 지나치게 서비스를 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님들에게 다시 찾고 싶은 맛집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깨끗하고 분위기 좋고, 서비스 좋은 곳으로 기억돼 고객들 입에서 ‘나 그 집 참 좋아, 그 사장 참 좋더라’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직 7호점 새내기 가맹점주는 고객과 운영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막상 점포를 운영해보니, 직원들 관리하는 것도 녹록치 않다는 김 점주. 그럴수록 직원들에게 잠깐 있다가 거쳐 가는 곳이 아닌, 일터로서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주방은 연일 바지런한 어머니가, 홀은 서비스 마인드가 풍부한 김 점주가 주로 관리하며 매장을 돌본다. 단골 고객의 ‘내 돈 주고 음식을 먹지만, 여기 오면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는 말을 되새기며 오늘도 그녀는 <담다>의 주방과 홀을 눈썹 휘날리듯 누비고 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택하기를...
<공수간> 천호로데오점  이승원·임석훈 점주

과외로 맺어진 사제관계를 넘어 사업파트너로서 손을 맞잡은 이승원·임석훈 점주. 스승이었던 이 점주는 추진력이 강해 굵직한 선을 긋고 제자였던 임 점주는 신중한 자세로 묵묵히 따른다. 서로 간에 ‘No’ 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뚜렷한 목표를 바탕으로 성공을 확신했다는 두 사람. 동업에 대한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에는 불과 3개월이면 족했다.  글 이태성 기자  사진 박세웅 팀장, 윤동훈 기자

운명과 같은 끈끈한 인연
지난 6월 오픈한 <공수간> 천호로데오점. 요식업 창업에 관심이 많던 이승원 점주와 오래전부터 식당을 운영하던 부모의 영향으로 장사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던 임석훈 점주가 같은 목표를 두고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두 사람은 10여년 전 과외를 매개로 사제의 연을 맺고 이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의를 다져왔다.
<공수간>을 택한 이유는 자신들은 물론 남녀노소 좋아하는 것이 분식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아울러 초보창업이었기에 보다 성공률을 높이고자 가맹점창업을 선택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맛이 좋았다고. 이후 매일 두세 군데씩 3개월여 서울과 수도권 웬만한 상권은 모두 이 잡듯이 다 돌아본 결과 천호동 상권이 제격이었다. 유동인구도 많고 점포의 규모나 임대료 등이 모두 적합했다. 또한 프리미엄 분식을 지향하는 브랜드 특성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상권이었다. 이 점주는 “본사에서 여러 조언을 받았고 소상공인진흥원 등에서 제공하는 상권분석자료 등을 참고하며 약 8개월 정도 상권분석에 매달렸던 것 같다”며 치열했던 창업과정의 고뇌를 에둘러 토로했다.

가게를 위한 시간 ‘24시간’
일반적으로 동업의 결과는 좋지 않다. 따라서 주위에선 누구나 반대한다. 두 사람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당연했다. 이에 대해 임 점주는 “당연히 반대가 심했다. 그런데 전혀 와 닿지 않더라. 우리 두 사람이 목표가 뚜렷해 자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점주는 “성격이 정반대라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도 호흡이 잘 맞더라”고 덧붙였다. 더욱이 사제의 연이 있었기에 상호간에 기본적인 예의가 몸에 배어 있음은 물론, 제자였던 임 점주가 자연스럽게 스승을 따라가게 되면서 의견충돌이 일어날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이 점주 역시 전권을 임 점주에게 위임하고 한 발 뒤로 물러섬으로서 서로간의 분명한 영역을 형성했음은 물론, 보완의 여지를 남겨두는 등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시켰다. 
두 사람은 현재 가게 인근에 원룸을 구해 ‘24시간’ 붙어 지내며 온 종일 가게에 대한 생각만하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만 한단다. 이것이야말로 매출로 이어지는 주된 요인이라고 자평하는 그들. “가게를 위해 일하는데 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상반된 의견이 나오면 두 가지 다 해보고 더 나은 것으로 선택한다.”


오픈 일곱 달째, 7명의 직원
‘7’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없느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두 사람 가운데 임 점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12월은 올해의 마지막 달이자 오픈한 지 일곱 달째다.” 이어 이 점주는 “우리 직원이 7명이다”라며 온통 가게 생각만 하고 있다는 말을 은연중에 입증했다.
오픈 초기 조리법은커녕 설거지 하는 요령부터 고객 응대도 미숙해 많이 헤맸다는 두 사람. 본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달라는 요구에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에 너무 힘들어 본사에 의지하고 싶었지만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 답을 주는 사람이 없어 3개월까지는 정말 힘들었다”며 “사실 본사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 생각했기에 당시엔 조금 서운한 마음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덕분에 보다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도리어 고마움을 표한다. 창업에 대해 “절벽에 선 느낌”이라고 말하는 그들. 점주 입장에서는 200여명의 다른 고객을 상대하지만 고객들은 오직 나만을 바라본다며 매 순간 긴장해야 하는 탓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성공률이 높다고 조언한다. 덧붙여 돈 보다는 체력적인 문제도 고려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 10년은 너끈합니다.
<맥주바켓> 7호점  박범준 점주 

“계약 시 7호점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잘 되려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수험생활을 하던 중 돌연 창업을 선택했다는 박범준 점주. 셀프 맥주바가 생소하던 때에 <맥주바켓>이라는 브랜드 콘셉트에 매력과 확신을 느껴 과감한 결단을 해 어느덧 성공적인 3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신촌점에 대한 계획을 묻자 앞으로 10년은 거뜬하다는 당찬 대답이 돌아왔다.  글 엄보람 기자  사진 박세웅 팀장, 윤동훈 기자

고급스러운 셀프맥주바, 확신 있었죠
담담하고도 편안한 인상, 느린 듯 조리있는 차분한 말투. 오랫동안 수험생활에 매진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듯한 학구적인 분위기. 언뜻 봐서는 ‘창업’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듯한 박범준 점주는 치열한 신촌 상권에서 <맥주바켓>을 3년째 성공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지금은 80여개의 가맹점으로 확장하며 ‘국민 셀프맥주바’가 됐지만, 인지도가 높지 않은 신생 브랜드였던 당시에는 선뜻 선택하기가 어려웠을 터. 하지만 박 점주가 <맥주바켓>을 선택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TV의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맥주바켓>을 보고 ‘셀프맥주바’라는 걸 처음 알게 됐죠. 콘셉트가 마음에 들어 구체적으로 알아보게 됐고, 여타 브랜드와 달리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공간에서 가볍게 맥주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여러 가지로 확신이 있었죠.”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앞서 오픈한 가맹점들을 견학한 그는 ‘조금 큰 규모로 여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130평 복층 구조의 현재 매장을 오픈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신촌점의 규모와 멋진 인테리어는 모든 가맹점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인데, 그래서인지 <맥주바켓>의 모델 매장격으로 예비창업주들의 방문을 많이 받는다고.

단체손님이 왔는데 왜 가만히 있냐
그가 꼽는 <맥주바켓>의 장점은 셀프맥주바의 특성상 운영이 깔끔하고 간편해 큰 어려움 없이 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단체 고객이 많은 주말이나 연말 시즌에도 2~3명의 인원으로도 끄떡없다. “한 번은 70여명 정도의 단체손님이 와서 복층 전체를 다 이용한 적이 있어요. 그때 친하게 지내는 옆 점포 점주가 잠깐 놀러왔다가 바쁘게 움직이지 않는 저희를 보고 ‘70명씩이나 왔는데 왜 가만히 있냐’고 할 정도였죠.(웃음)” 뿐만아니라 맥주 종류만을 취급하다보니 여타 주점처럼 과하게 취한 손님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도 없다고. 
하지만 아무리 상대적으로 수월하다고 해도 점주의 입장에서 하나의 점포를 이끌어가는 건 고된 일. 박 점주는 “오픈 후 최고매출을 찍고나니 몸무게가 12kg이 빠져 있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3년차에 접어든 요즘도 매일 한결같이 직접 점포를 돌본다. 오후 5시 반부터 영업을 시작해 주중에는 새벽 3시, 주말에는 새벽 4시가 되어야 하루 일과가 모두 끝난다. 맥주바는 <맥주바켓> 신촌점이 유일했던 3년 전과 달리, 근래에는 인근에 타 셀프맥주바와 스몰비어전문점들이 많이 생겨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어느덧 무럭무럭 자란 외식창업의 꿈
창업 초기에는 매출 기복이 생기면 조바심도 많이 났지만, 수년의 운영경험으로 큰 흐름을 읽는 눈이 생겨 이제는 조금의 매출 기복이 생기더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박 점주. 원래 맥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그는 <맥주바켓>을 운영하면서 각각의 맥주 맛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단다. 그간 마셔 본 맥주 종류만 해도 150여종에 이른다고. 가끔 손님들이 맥주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향긋한 밀맥주 위주로 추천하는 편이라고 귀띔한다. 비교적 일하기 좋은 환경과 무던한 성격의 박 점주 덕분인지 신촌점에는 오랫동안 일하는 직원들도 많다. 신혼 한 달차 새신랑인 박 점주는 “신혼여행을 가서도 외식 쪽만 눈에 띄더라고요. 아시안 누들 전문점이 많은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곳에서 마음 속으로 어떤 어떤 것을 하면 좋겠다 하는 아이디어가 마구 떠올랐죠.”
<맥주바켓> 창업을 통해 외식업에 입문한 박 점주는 어느덧 외식업의 매력에 푹 빠져 여러 가지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다. 덕분에 요즘에는 음식점 등을 많이 찾아다니는 편이다. 창업에 대한 두려움이 없냐는 질문에 “나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항상 있다. 젊었을 때 뭐든지 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며 스스럼없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당찬 청년이다.





나의 운영 노하우는 '초심'
<국수나무> 장안점  박영선 점주

그런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리 힘든 여건이지만 현실을 당당하면서도 즐겁게 대면할 줄 아는 사람. 내가 지금 어떤 일을, 왜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 안일한 일상에 젖기 보다는 끊임없이 에너지를 발산해 주변에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 <국수나무> 7호점 박영선 점주는 상대방에게 그런 활기를 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항상 즐겁게 일하는 그녀의 모습은 바라만 봐도 힘이 난다.
글 임나경 편집장  사진 박세웅 팀장, 윤동훈 기자

믿음직한 파트너와의 상생이 즐겁다 
남편과 함께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박영선 점주는 남편의 꼼꼼하고 차분한 성격과 자신의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 점포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물론, 창업 초창기엔 부부가 한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부딪히는     일도 많았지만, 지금은 눈빛 하나면 통하는 최고의 파트너가 됐다. 해피브릿지의 <화평동 왕냉면>을 5년 동안 운영해오던 박 점주는 제2의 창업으로 같은 회사의 다른 브랜드인 <국수나무>를 선택한다. 바로 프랜차이즈 본사와의 신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가맹점주를 만나면 “나는 해피브릿지를 ‘러브’한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할 정도로 본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이는 본사가 가맹점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며, 상생하고자 하는 의지를 그녀가 항상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본사가 더욱 성장하기를 바란다. 본사의 성장이 바로 가맹점들에게도 매우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객과의 진정한 소통이 있는 매장
사람을 유난히 잘 기억하는 박 점주는 2~3년 전에 한 번 방문했던 고객도 바로 알아차리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렇게 고객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단골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주부나 아이들이 매장에 방문해도 그녀는 한 마디라도 더 건네며 안부를 묻곤 한다. 이런 자신을 보며 그녀 역시 장사가 적성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녀는 점포를 운영하는 데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다. 물론, 그녀 역시 창업 새내기 때에는 고객들에게 가는 게 두려울 정도로 겁먹었을 때도 있었다. 고객이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볼까봐 겁이 났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장사’라는 생각에 바로 마음을 고쳐먹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매진했다. 자신이 그만큼 열심히 하다보니, 직원들도 잘 따라와 주었고, 고객들도 알아주기 시작했단다.

“장사가 제일 쉬웠어요”
5년 전 7호점으로 점포를 오픈했지만 지금까지 점포 매출은 꾸준하다. 오히려 갈수록 점포 매출이 오르고 있다. 현재 운영하면서 주방 일이 다소 많기는 하지만, 고객들이 바로 이 부분 때문에 <국수나무>를 찾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녀가 5년 가까이 7호점으로 즐겁게 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창업이 가장 쉬웠어요”라는 농담을 던지며 환하게 웃는 그녀는 자신이 열심히 한 만큼 다른 모든 것들이 따라와 줄 수 있었기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가맹점도 몇 개 더 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래서 그녀는 10년의 장사 베테랑이지만 지금도 시간이 나면 각종 창업관련교육을 받으러 다니곤 한다.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은 오로지 ‘초심’이었다는 박 점주. 지금도 직원들 보다 30분 먼저 점포에 와서 영업준비를 모두 해놓는다. “제가 열심히 살아가니 아이들도 잘 따라와 주고 남편도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맙고, 직원들은 물론 해피브릿지 역시 든든한 본사가 되어주어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렇게 3박자가 잘 맞으니 점포 운영도 잘 된다는 박영선 점주. 화사한 웃음이 추운 겨울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듯하다.




 
'꾼너머 꿈'을 간직한 여장부
<더후라이팬> 인천부평점 박윤옥 점주

밝고, 따뜻하다. 그는 처음 만나는 사람도 마음의 경계를 쉽게 무너뜨리게 하는 넉넉한 품을 가진 사람이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게 뭔지 아세요?” 어떤 순간에는 도리어 물음표 가득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7호점으로서 어떤 행운을 얻었는지를 질문하기 위해 <더후라이팬> 인천부평점을 찾았지만, 도리어 행운을 얻은 건 기자였다.  글 엄보람 기자  사진 박세웅 팀장, 윤동훈 기자

3일만에 창업 결심하다 
“이곳에 <더후라이팬>을 열던 당시에 이 근처에는 정말 옷가게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기껏해야 분식집 하나, 치킨집 하나가 전부였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용감한 결단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인근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음식점이 들어선 메인 상권이 됐지만, 당시에는 옷가게만 즐비한 단촐한 거리였다고. 박윤옥 점주는 바로 그곳에서 2009년, <더후라이팬> 7호점을 열었다. 창업을 결심하고 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아이템은 ‘치킨’이었다. 인터넷으로 서치를 시작했다. 그러다 <더후라이팬>에 대한 포스팅을 우연히 발견했다. “치킨전문점에 대해 우려했던 것들을 모두 불식시켜줬어요. 인테리어가 세련되고, 취객 때문에 속 썩을 일도 없으며, 배달을 하지 않아도 돼 혼자서 운영하기에 딱이었어요.” 결정은 3일만에 이뤄졌다. 당시 본부장은 전화상담을 통해 본사 대출지원 등에 대해서 알려줘 안심시켜줬다. 박 점주는 창업설명회 참관을 위해 방문한 신촌본점에서 메뉴 시식을 했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이것도 못한다면 다른 것도 할 수 없다
가족들이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이미 확신을 가진 그를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그는 ‘망설이다 후회할 바에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다. 이것도 시작 못한다면 앞으로 다른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퇴직금에다 본사 주류 대출 등을 받아 <더후라이팬>을 오픈하게 된다. 처음엔 점포 한 구석에서 몰래 눈물을 훔친 적도 많았다. 손님이 없을 땐 초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문을 열고, 손님이 없더라도 새벽 2시까지 영업시간은 꼭 지켰다.
“감자칩 만들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은 자동 기계가 생겨 편해졌지만, 당시에는 생감자를 전용 깎기 도구로 직접 깎아내야 해서 손목 인대가 다 늘어났어요.” 맛있게 튀기기까지 시행착오도 겪었다. 햇감자와 저장감자가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해야 각 특성을 살려 맛있게 튀길 수 있는지, 이제는 감자 전문가가 다 됐을 정도. “한 번은 인천송도점에서 전화가 왔어요. 손님이 ‘감자칩이 별로다. 부평점은 안 이렇던데’라고 했다면서,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거냐고요.(웃음)” 그는 어느새 아파트 대출금과 창업시 대출금을 모두 갚고, 더 넓은 곳으로 이사했다. 이제는 부모님도 경제적으로 케어해줄 수 있을 정도가 돼 흡족하다.

하나의 꿈 이뤘으니, 또 꿈꿔야죠
“어렸을 때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며 웃음짓는 그는 그래서인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매출이 떨어지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조그만 닭 모양 인형이나, 고양이 인형 등을 하나씩 사서 매장을 꾸몄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날 매출이 오르더라고요.” 어느덧 5년차가 되니, 예비창업자들이 상담하러 찾아올 때도 많다. 현명하고 생각이 깊어 어렸을 때부터도 주변 사람들의 상담 역할을 자처한 그는, 예비창업자들에게도 친구처럼, 가족처럼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더후라이팬>은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마감을 끝낸 새벽에 점포 앞을 청소하는데 사람들이 지나가며 “이 집 맛있어”라고 할 때, 단골커플이 결혼한다며 선물을 주고 갈 때, 단골손님이 명절선물을 주고 갈 때 등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도 생겼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했고, 내 이름으로 된 집도 마련했고, 이미 하나의 꿈을 이뤘어요. ‘꿈 너머 꿈’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계속해서 또다른 꿈을 찾는 거죠.”
인터뷰의 말미에 그는 문득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 가장 후회하는 게 뭘까요?” 기자가 갸우뚱했다. “아, 그 때 그걸 해볼걸, 하는 거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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