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 신용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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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신용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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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1.1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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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디저트
‘떡’의 의미 있는 반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때까지 육상선수를 했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던 신용일 셰프는 대학에서 체육교육학과를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대기업 의류회사 입사. 이후 한식에서 떡의 세계로 뛰어든다. 독특한 이력을 지닌 신용일 셰프가 생각하는 우리 전통 떡은 어떤 것일까. 그가 말하는 떡의 매력에 빠져보자.   글 조민경 기자  사진 박세웅 팀장

생애 처음 만든 맛있는 슈크림 빵
운동을 좋아해서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지만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던 신용일 셰프는 부전공으로 의류환경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관심분야인 대기업 의류회사에 입사했지만 점차 그의 관심은 요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평소에 요리에 관심이 많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신 셰프는 대학시절 엠티를 가면 요리를 전담했을 정도였다. “제가 처음 만들었던 것이 슈크림 빵이었는데 대성공이었어요.” 요리에 흥미가 생긴 그는 집에서 자주 만들기 시작했고 쿠키를 만들어 어머니 친구의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 이처럼 요리에 흥미도 있고 재능도 있었던 그는 2000년에 마침내 요리 세계로 들어간다. 궁중음식 연구원에서 요리수업을 받던 그는 현장에서 직접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떡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병과점 <지화자>에 들어간다. 그리고 신제품 개발팀에서 활약하며 새로운 제품들을 생산한다. “처음엔 찹쌀, 멥쌀도 구분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 음식은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떡 기술을 배우는 게 여의치 않아 프랑스 유학을 선택한다. 프랑스의 제과 기술을 떡에 접목해 한국의 떡을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한 의도였다.
한식 셰프에서 본격적인 떡 인생 시작
그렇게 2004년, 그는 프랑스로 날아가 제과학교 ‘에콜 르노트르’에서 공부하기 시작한다. 2년 반 정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신 셰프는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노영희 선생의 스텝으로 일을 시작한다. 그 이후부터 그는 화려한 이력으로 내공을 쌓아간다. 2006년에는 일본 도쿄에 위치한 레스토랑 <고시레>의 부주방장, 2007년에는 스위스 제네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관저 요리사로 근무한다. 이후 2008년에는 베이징 하계올림픽 한국인 푸드컨설턴트로 활약하고 그 후 모던 한식 레스토랑 <품 서울>의 헤드셰프가 된다.
이 외에도 그의 이력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이렇게 한식 셰프로 입지를 굳히던 그는 2010년 병과점 <합>을 오픈하기에 이르렀다. “2010년에 병과점 <지화가>가 문을 닫았습니다. 무척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떡이 나아갈 방향을 잃을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모두 외면하면 더 이상 떡이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떡은 한국 사람이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렇게 우리나라 떡을 발전시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떡을 만들기 시작한다.
 
정확한 계량으로 탄생하는 떡의 가치
<합> 매장에 들어서자 마치 제과점 주방을 연상케 하는 조리대와 도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을 때의 다짐대로 떡에 제과 기술을 접목해 업그레이드 된 떡을 선보이고 있는 것. 증편과 약과는 오븐을 이용해서 만든다는 신 셰프는 취재진에게 서양의 머랭과자와 우리나라 호두정과를 접목한 ‘호두얼음과자’를 선보였다. 머랭과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기에 다소 단 맛이 강하다. 호두정과는 딱딱해서 높은 연령층의 고객이 먹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 둘을 접목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다. ‘호두얼음과자’는 호두를 살짝 구워 머랭을 입혀 만든 것으로 바삭하면서 부드럽다. 설탕 양은 반으로 줄이고 소금을 약간 넣어서 강정과 같은 느낌이 난다.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한식 디저트다.
그는 정확한 계량에 의한 떡을 추구한다. 습도와 온도, 분량 등을 수치화해서 만든다.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만드는 예전 우리나라 떡 제조방식은 노동집약적인 형태였다. 신 셰프는 정확한 계량을 통한 소량의 제품을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만든다. 노동집약적 형태의 제조방식을 기술집약적 형태로 전환한 셈이다. 낱개포장을 하고 디테일한 레시피로 떡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전통 제조방식을 바꿨다고 전통의 맛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낙후된 기술적, 도구적 문제를 개선해 전통의 맛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떡 문화 발전을 위해
팥빙수는 여름에는 줄 서서 먹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는 처음에는 팥빙수에 떡을 넣지 않았다. 떡 없는 빙수에는 이유가 있었다. 빙수에 들어간 떡은 시간이 지나면 굳어버리기 때문. 그는 밤을 새면서 굳지 않는 떡을 개발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만들면서 연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빙수에 넣어도 굳지 않는 떡을 개발했다. 이러한 그의 열정에는 우리 전통 떡이 퇴보하지 않고 발전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다.
그가 추구하는 떡의 중심은 새로움이 아니다. 그는 일반 떡 전문점에서 만들지 않는 잊혀가는 전통 떡을 상품화 시켜 널리 알리고 싶다. 그 방법으로 변해가는 시대와 고객 기호에 맞춰 새로움을 입혀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그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생각으로 변화해 떡 문화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떡 만드는 일로 한국적인 것을 지킨다는 생각에 자랑스럽다는 그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껴야 즐겁게 오래 할 수 있어요.”
최근에는 ‘타락죽’을 새로운 레시피로 개발해 고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너무 욕심내지 않고 현재의 일에 충실하다보면 시간이 흘러 떡의 가치를 인정해 줄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의 이런 묵묵한 노력으로 우리 전통 떡과 한식 디저트가 빛을 발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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