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에 생기를 주는 "열정의 화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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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에 생기를 주는 "열정의 화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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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1.1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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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공통분모는 ‘길’
리더(Leader)의 소임이란 뭘까? 다양한 해답이 있겠지만, 구성원이 원하는 바는 아마도 ‘길’일 듯싶다.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로 다가가는 정확한 경로. 이를 보여주는 일이야말로 리더된 자의 몫이다. 10월을 맞아 본지가 만난 프랜차이즈 본부의 수장들은 부드러운 리더십부터 조직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까지, 각기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저변에 깔린 공통분모는 존재했다. 바로, ‘길’을 제시하는 능력. 첩경일 수도 혹은, 돌아가는 길이 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믿음과 확신이 존재했다.

(주)바인에프씨
김광훈  본부장
(주)바인에프씨가 최근 이전한 양평동 새로운 사옥에서 김광훈 본부장을 만났다. 32세 젊은 나이에 지난 2월 본부장으로 전격 승진한 그는 <셰프의 국수전> 창립 멤버다. 또 이 회사를 만들기 이전부터 김석훈 대표가 운영했던 이전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점장, 슈퍼바이저, 메뉴바이저 등 전 부서를 아우르며 7년 가까이 현장경험을 몸으로 톡톡히 익힌 그다.  글 임나경 편집장  사진 박세웅 팀장

배우고 경험하고 즐겁게 일하라

관계와 관계를 조율하다
“어린 나이에 본부장으로 승진해 어려움이 많았죠. 오히려 일은 기존에 해왔던 것의 연장선상이라 쉬웠어요. 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이 사람과의 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상사와 직원, 수많은 협력업체와의 관계와 이를 조율하는 데 많은 신경을 써야 했으니까요. <셰프의 국수전>은 브랜드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 개발해왔기 때문에 업무에 관한한 전혀 어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후배를 대한다거나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의 중간관리자 역할, 각종 협력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은 그에게 끊임없이 연구하고, 부단한 노력을 하게끔 이끌었다. 특히 협력업체의 경우 본부장이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자신의 회사를 가볍게 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더욱 정장을 갖춰 입고,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며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고 확고히 해나가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터득해 나갔다. 취미가 술자리라고 선뜻 말하는 그는 매주 금요일이면 직원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한 주간의 일을 되돌아보고 서운했던 것이나 즐거웠던 일과를 함께 나눈다. 물론, 강제 사항은 아니라고.


경쟁력 있는 브랜드 살아남다
(주)바인에프씨는 최근 <오드리햅번카페>를 론칭하고 더욱 분주한 모습이다. 양평동으로 옮긴 사옥은 기존 교육장과 떨어져 있던 것을 한 데로 옮겨 더욱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게 됐다. 회사의 음료사업팀이 생겨 업무가 더욱 타이트해 진 덕분에 김 본부장은 외식사업팀을 대부분 위임받아 운영한다. <셰프의 국수전>과 <셰프의 육개장>에 이어 최근 진행하는 콜라보레이션 브랜드 <셰프의 국수N육개장>은 계절에 상관없이 고객몰이에 선전 중이다.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업무에 임하는 것이 장점인 그는 학창시절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이와 관련된 업무를 해왔던 덕인지 이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때문에 사내에서 추진하는 사회공헌 사업에도 발 벗고 나선다. 7년 가까이 프랜차이즈 사업에 몸담아 온 그는 가맹점은 점주에 따라 사업성공의 승패가 좌우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또 프랜차이즈가 시스템 사업이라는 것에는 긍정적이지만, 순식간에 뜨고 지는 생리에 대해서는 좀 안타깝다. 때문에 최근 가맹법 규제 강화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이다. 브랜드에 대한 엄격한 규제는 경쟁력 있는 브랜드만 살아남게 해 가맹점주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수가 맛있는 집’으로 각인될  때까지
회사 대표의 오른팔로서 사업을 전개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고, 직원들에게는 그들의 ‘장기’를 살려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김 본부장. 또 선배들에게는 그들의 능력을 십분 살릴 수 있도록 존중해주어 더 나은 시너지를 창출하고 싶다. “직원들이 회사를 통해 배울 것이 많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평소 후배들에게 많은 경험을 쌓으라고 합니다. 당시는 귀찮고 힘들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자신이 앞으로 일하고 생활하는데 좋은 경험치가 될 것이기 때문이죠.” 이것은 그가 그동안 살아온 인생 궤적을 통해 몸소 체험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언젠가는 사회복지 사업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이들의 뇌리에 <셰프의 국수전> 하면 ‘국수가 맛있는 집’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그는 점포 개수에 연연해하지 않고, 보다 내실 있는 브랜드 다지기에 주력할 생각이다. 

(주)태창파로스
김현욱 본부장
구수한 부산 사투리와 사람좋은 웃음, 처음 본 사람도 쉽게 경계를 풀게 하는 호인(好人)의 매력을 지닌 김현욱 본부장. (주)태창파로스의 창립멤버로서 회사를 일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그는 작년 초 재입사를 하면서 (주)태창파로스의 제2의 전성기를 만들고 있다. 본부장은 오너와 직원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그는 (주)태창파로스의 든든한 덕장이자 용장이다.  글 엄보람 기자  사진 박세웅 팀장

덕장같은 상사, 산타클로스 같은 아빠

하루 세시간 자며 근무, 정신없이 보낸 창립 시절
김현욱 본부장과 (주)태창파로스와의 인연은 (주)태창파로스의 전신인 제조회사 태창실업이 부산에 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그는 태창실업의 해외영업부에서 근무한다. 해당 직무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999년도 태창실업에서 외식사업부를 발족하면서 브랜드를 일구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국내에서는 프랜차이즈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인데다, 외식사업 또한 처음이었던 그에게 당시는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간이었다.
“하루에 3시간이나 잤을까요? 정말 정신없던 시절이죠. 회장님이 워낙 완벽한 성격이다보니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기에 힘든 부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만큼 실력도 늘고 성장하던 시간이었요.”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묻자 그는 <쪼끼쪼끼> 브랜드를 론칭하던 때를 회상하며, 자신도 모르게 활짝 웃어보인다. “당시 상담부터 오픈까지 담당한 <쪼끼쪼끼> 가맹점이 99㎡(30평) 규모에 일매출 400만원을 내며 매출규모가 엄청났어요. 제 가게가 아닌데도 굉장히 기분이 좋고 짜릿했어요.”

직원을 묵묵히 기다려주는 상사
이렇듯 (주)태창파로스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해온 김 본부장은 몇 년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임원직을 맡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굉장했죠. 맡고 있는 일도 많았거니와 자나깨나 늘 회사의 세세한 부분까지 다 걱정해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건강상의 큰 고비를 넘긴 후로 그는 즐기던 술, 담배도 모두 끊고 채식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은 여전하지만, 업무도 대폭 축소해 현재는 가맹상담, 컨설팅, 수익 분석 등 창업 파트만을 중점적으로 맡고 있다. 하지만 ‘적당히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여전하다. “사실 회사 내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가 되면 적당히 일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절대로 적당히 하지 않아요. 제가 적당히 하면 직원들 또한 그렇게 따라오게 마련이거든요.” 더불어 그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은 하지 않고, 사주에게 원하기만 한다”며 사회생활 선배로서의 조언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직원들에게 절대 잔소리를 하지 않는 상사다. 잔소리는 도리어 서로에게 에너지만 낭비하게 하기에 소용없다는 생각. 대신 그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잘 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준다. 그러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잘 따라와준다고.


(주)태창파로스의 용장, 집에서는 영락없는 딸바보
국내 최초 상장 프랜차이즈 회사이자, 몇 안 되는 대형 프랜차이즈 회사의 본부장으로서 그가 갖는 본부장의 역할에 대한 생각은 확고하다. “본부장은 사실 빛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요. 본부장은 오너와 직원들의 중간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빛내줘야 하는 게 본부장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대외적으로는 오너를 빛내주고 대내적으로는 직원들을 빛나게 해줘야 합니다. 가령 직원들이 프로젝트 등을 해냈을 때 그에 맞는 포상을 확실히 해주는 것 등이 그것이죠. 말하자면 본부장은 꼭 필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묵묵히 존재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가끔은 외로운 자리이기도 하지만요.(웃음)”
그래서일까. 그는 직원들에게 ‘덕장(德將)’으로 불린다. “저 스스로는 용장이라고 생각하지만요.(웃음)” 기자에게 비친 김 본부장은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기까지 한 덕장이자 용장의 면모를 모두 갖춘 사람인 듯했다.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바로 딸과 보내는 시간이다. 딸과 함께할 때는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도 씻은 듯이 사라진다고. “얼마 전 딸에게 아빠가 어떤 존재냐고 물어봤더니, ‘아빠는 일년내내 산타클로스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내가 유일하게 다정한 사람이 바로 딸’이라고 말하는 영락없는 딸바보인 김현욱 본부장. “이제 10살인 딸이 더 크면 함께 라운딩도 나가고 싶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주)오투스페이스
이준수  이사
약 10여 년 전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매장을 지키던 이준수 이사는 다소 취기가 오른 어린 고객을 맞이한다. 허겁지겁 떡볶이를 들이킨 고객은 다짜고짜 돈이 없다며 ‘깽판’이다. 결국 설거지를 시킴으로써 값을 대신하게 했는데, 곧잘 하는 모습을 보고 정식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그는 현재 (주)오투스페이스 최연소 대리로 자리 잡으며 슈퍼바이저로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이처럼 사소한 것에도 아닌 것에 있어서는 결코 타협을 모르는 이 이사. 물론 그에 걸맞는 결과물도 도출해 낸다. 그런 그의 고집스런 열정이 없었다면 현재의 <아딸>도 없었을지 모른다.  글 이태성 기자  사진 박세웅 팀장

단지 고객들이 맛있어 했으면...

분식집의 품격을 높이다
(주)오투스페이스 이준수 이사는 출판사와 언론사 기자를 지낸 문학가였다. 이를 바탕으로 형인 (주)오투스페이스 이경수 대표가 작은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하던 때 가게 이름을 짓는 과정 등에 간접적인 참여를 한다. 그러던 가운데 점차 가게가 맛집으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체인사업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등 브랜드화가 이루어지자 이 대표의 부름이 있었다. 이에 이 이사 역시 가족이 함께해야할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본업을 뒤로한 채 지난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장 현장으로 향했다. 사업 초기였던 터라 지금과 같은 본사사무실이 마련돼 있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현장경험을 익혀야 한다는 지론이 앞섰다. 이에 둔촌동 지점을 맡아 경험을 쌓은 후 <아딸>의 모태인 신촌 <허브감탄>까지 약 5년간 현장을 진두지휘하기에 이른다. <허브감탄>은 기존 분식집을 탈피한 남다른 인테리어 디자인과 앞선 메뉴를 선보여 인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남녀노소 끊임없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는다. 특히 <허브감탄> 간판은 국내최초로 파돌벽을 활용하며 아주 심플한 로고를 선보여 서울시에서 모범간판사례 아름다운 가게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 바로 이 이사의 손길이 녹아있다.

<아딸>이 직면한 가장 큰 고민은…
이 이사는 2008년 <아딸>이 본격적으로 브랜드화 될 때 본사로 합류했다. 5년여간 몸소 현장을 누비며 누구보다 <아딸>의 장·단점을 꿰고 있는 그였지만 오너의 동생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부담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그는 첫 1년간 아무런 직함도 월급도 없이 회사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이후 그는 그간 눈여겨본 약점을 보완하기 시작했다. 먼저 교육부를 구성했다. 레시피북은 있었으나 전반적인 매뉴얼이 미흡해 가맹점은 물론 직원 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공채형식으로 전환해 신입사원은 무조건 최소 현장근무 3개월을 규정했다. 홍보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딸>을 홍보하기 위해선 현장에서부터 요리까지 모두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2003년부터 1년 반 동안 각종 조리사자격증을 취득하고 유명 음식점에 가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그때가 29살, 요리를 시작하기엔 다소 늦은 나이였죠. 그러나 지금은 국내 내로라하는 셰프의 수준에 이른다고 자부합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지독한 공부벌레다. 즉 요리공부 역시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 했다. 그에게 있어 떡볶이는 단순한 분식이 아닌 하나의 요리였고 그 무엇보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을까에 몰두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그의 앞에 놓인 가장 큰 난제가운데 하나다. “<아딸>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가맹점이 직영점과 동일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가맹점에 신뢰를 바탕으로 최고로 우뚝
그는 과거 가맹점주와 정말 많이 싸웠다고 고백한다. 가맹점 200여개 시절, 간판만 같을 뿐 가맹점들이 일관성이 없었다며 이를 탈피하기 위해 전체 가맹점을 직접 찾아가 시스템을 다잡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고. 그가 요구한 것은 친절한 서비스와 레시피 준수, 철저한 위생관리 그리고 값이 싸다고 검증받지 않은 식재료를 사입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과연 가맹점주와 빚어졌을 마찰은 불 보듯 하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아딸>의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프랜차이즈는 성장하기 위해 넘어야할 산이 있습니다. 100~300호점까지는 고객의 선택이고 이후 500호점으로 가는 과정은 점주의 선택이죠. 그리고 700호점까지는 시스템 구축, 1000호점까지는 총체적인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부족하면 결국 무너지게 되는 것이죠.” <아딸>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식재료 납품가가 동일하다. 그간 물가는 몇 배 이상 뛰었으나 본사는 수익을 포기한 채 납품가 동결을 고집하고 있다. 1000여개 가맹점은 이 같은 헌신에 보답하듯 단 한곳도 사입 없이 본사의 물류를 이용한다. 눈 씻고 찾아봐도 본사보다 저렴하게 제공하는 곳이 없다는 믿음이다. 즉, <아딸> 가맹점주는 ‘시장가보다 비싼 것이 아닌가’하는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셈이다. “장사하는 점주의 마음은 좋은 제품 싸게 구입하는 것이 최고 아닌가요?” 앞으로도 최고의 맛을 고집해 비가 오나 눈이오나 무조건 먹고 싶을 정도의 맛을 유지하겠다는 이 이사의 다짐, 결코 가벼이 들리지 않는다.


(주)힐링킹
박정숙  교육본부장
(주)힐링킹 박정숙 교육본부장의 이미지는 선생님. 첫인상부터 그녀의 삶을 숨길 수 없다. 대상은 아이에서 성인 여성으로 바뀌었다. 주제는 건강과 힐링을 넘나든다. 박 본부장에게 그간의 인생 경로를 물었다. 그녀는 삶 자체로 답변을 대신했다.  글 조호성 기자  사진 박세웅 팀장

힐링의 전도사, 건강을 설파하다

치유의 공간 ‘힐링캠프’
(주)힐링킹 박정숙 교육본부장의 역할은 치유를 전파하는 전도사. <썬플렉스>라는 브랜드로 주변에 힐링의 삶을 권한다. 직원 교육을 책임진 그녀에게 건강과 치유는 인생에서 소중한 부분이다.
“힐링캠프라 부르는 공간은 여성 전용입니다. 매장에 산소, 수소 발생기가 달린 스파가 있습니다. 족욕기, 좌훈기도 설치돼 있고요. 입장하면, 얼굴 마사지부터 두피클리닉까지 치유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한 번에 경험하게 됩니다.”
그녀 역시, 힐링캠프의 단골로서 고객과 함께 치유의 공간에서 교육을 진행한다. 대체 의학에도 조예가 깊은지라 설명에는 막힘이 없다. 박 본부장은 100세 시대를 맞아 오래 사는 삶보다 건강히 지내는 게 중요하다는 지론을 펼친다.
“명의(名醫)란 치료보다 예방을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을 얻고서 고치기 어려운 만큼, 사전에 건강과 힐링을 중시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치유를 권하고 조언하는 제 삶은 만족스럽고 보람을 느낍니다.”


수완 좋은 그녀, 끼(?)를 내뿜다
지금은 힐링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일을 하지만, 박 본부장의 첫 직장은 교육 분야였다. 결혼 전, 교사의 삶을 살던 박 본부장은 본의 아니게 프랜차이즈 업계에 발을 들인다. 용어 자체도 생소했던 시절, 미용 기술을 제자들에게 전수하며 점포 개설을 도왔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난 직후다.
“미혼이던 시절에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교사였습니다. 결혼 뒤, 가정에 고비가 찾아와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죠. 미용 기술을 수강생에게 가르치며, 그들의 성공을 도왔습니다. 현재도 미용 숍을 운영하는 많은 제자가 제 주변에 있습니다.”
미용 산업에서 끼(?)를 발산하며 박 본부장은 탄탄대로를 걷는다. 월수입이 무려 1000만 원대에 달할 정도로 그녀의 수완은 뛰어났다. 가정의 고비도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건강한 삶에 관심을 뒀던 박 본부장은 인생의 경로를 수정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적성에 맞았죠. 지금 생각하면 아이를 가르치던 교사 때부터 힐링 분야의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고 이 길을 꾸준히 걸어갈 생각입니다.”

건강한 가족, 삶이 곧 힐링
집안에서도 그녀의 생활은 건강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오전 7시 아침 식사를 결코 거르지 않는다. 가족 모두 정량의 음식이 담긴 접시를 가지고 아침을 먹는다. 반면, 저녁 식사는 오후 7시 전 소량을 먹는 데 그친다. 이 때문에 다음 날 개운하고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현대인은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힐링할 겨를조차 없습니다. 저녁에는 술과 고기로 회식을 해야 하죠. 당연히 일어나는 게 힘들고 입맛이 없어 아침을 거를 수밖에 없습니다. 악순환의 반복이죠. 건강한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박 본부장 역시,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아는지라 이 같은 현대인의 일상을 이해한다. 아침과 저녁이 뒤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녀도 한때 겪었다. 하지만, 습관이 성공을 부르듯 그릇된 방식을 고친 뒤 안정되고 건강한 삶이 찾아왔다.
“세 명의 자녀를 뒀는데, 모두 잘 자랐습니다. 평소에는 걷는 운동을 자주 하고 힐링캠프에서 몸을 챙깁니다. 여성으로서 집안일과 바깥일을 동시에 한다는 게 쉽지 않지만, 원하는 분야에서 일을 하기에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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