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현 대표 (유)삼손과글로벌 <핑거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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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대표 (유)삼손과글로벌 <핑거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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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1.1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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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혁명
     제4의 음식도구 ‘핑거캡’에 전 세계가 술렁

Profile
빠른 결단력과 동물적 감각의 판단력으로 승부수.
핑거캡으로 전 세계를 평정하려는 야망의 주인공
식탁 위의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위생 비닐장갑 <핑거캡>의 주인공 (주)삼손과글로벌의 박종현 대표. 그의 나이 45세, 학원사업으로 1억2000만원의 빚을 졌을 당시 주위에서는 파산신청을 하라고 조언 했지만 그는 끝내 신용회복을 자청한다.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장장 7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모든 빚을 갚게 된다. 그의 성품이 어떠한가를 알게 해주는 하나의 일화다. 박 대표는 요즘 날개를 달았다. 고진감래 그 자체다. 해외에서의 <핑거캡>에 대한 러브콜이 예사롭지 않게 순풍을 달고 항해 중이다. 일본, 중국, 미국,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등 세계 20여국에서 수출을 위한 상담이 이루어지고 한창 결실이 맺어지고 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내년에는 약 500억원의 수출을 계획대로 달성할 수 있을 전망이다. 6000만원에 <핑거캡>의 모든 권리를 인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13억원을 투자해 제품을 업그레이드시켜 시중에 내놓을 정도로 그의 품질에 대한 완벽주의는 집요할 정도로 철저하다. 지금 <핑거캡>이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그의 말대로 ‘제4의 음식도구’로 자리매김할지는 더 두고 볼일이지만 요즘의 흐름을 보면 그 가능성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이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것도 꽤 흥미로울 것 같다.


박람회장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삼손이’의 등장
2013년 9월 5일, 서울 소재 전시 전문장소 삼성동 코엑스 1층. 국내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가 열렸다. 전시장 문이 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관람객들이 밀려든다. 창업에 목말라 있는 반증으로 읽혔다. 박람회에 참가한 기업들 역시 관람객들의 시선에 집중했다. 자신들이 창업의 주인공으로 선택받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그런데 묘한 현상이 목도되기 시작한다. 참가한 대다수 프랜차이즈 본사들 틈에 낀 한 제조회사 부스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호기심에 인파는 더 불어나고 발꿈치를 들고 보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무엇일까. 도대체 어떤 상품이기에 관람객들의 마음을 이렇게 송두리째 움켜쥔단 말인가. 공식 이름은 <핑거캡>. 일명 ‘삼손이’라고도 불린다. 엄지, 중지, 검지 등 세 손가락에 씌우는 위생 비닐장갑이 바로 주인공.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있는 치킨 등 패스트푸드를 먹을 때 위생적이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든 제품이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던지길 마다하지 않는다. “어~ 이것 봐라. 신기하네” “야, 이런 게 다 있었네” “이거 정말 최고의 히트상품이 되겠는 걸” “얼마 안 있으면 떼돈을 벌수 있을 것 같은데” 등등 많은 말들을 남기고 가는 것이다. 시식을 위주로 해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외식 프랜차이즈를 제치고 최고의 인기를 끈 코너는 단연 <핑거캡>이었다. 특히 ‘쪽갈비’ 전문 프랜차이즈 기업인 <예감>부스의 시식회 장소에서 손에 이 제품을 끼고 먹는 관람객들의 만족도는 말 그대로 최고였다. 휴지로 손을 닦을 필요 없고 위생적이며 편리함에 다들 칭찬일색이었다.
<핑거캡>의 폭발적인 인기는 사실 이번 행사뿐만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08년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특허청장 최고상(금상)을 받았고 해외 전시회인 동경, 홍콩 메가쇼에서 많은 참관객들의 시선을 끌며 가장 많은 상담을 한 아이디어 상품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문의 전화가 오고 있을 정도다. 현재는 국내에만 총판점이 55개가 개설돼 있고 전 세계 20여국에 수출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모든 장갑들은 다 드러누워 있는 상태에 있는 제품인데 반해 <핑거캡>은 세로로 세워져 있는 특이성을 갖춘 제품이다. 이로 인해 20년간의 발명특허를 받기도 한 무한대의 기대주다. 지금은 전 세계에 특허를 출원 중에 있다. 이처럼 속도를 내가며 항진하고 있는 <핑거캡>은 날이 갈수록 용도의 다양성이 더욱 확장되고 있다. 초창기에는 치킨, 피자, 족발, 닭발, 햄버거, 샌드위치, 호떡, 갈비, 쪽갈비, 대게, 간장게장 등 손으로 먹는 음식들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이 돼 왔으나 그 효용성이 무척 탁월해 타 분야로 전이되고 있다.

2008년도에 이미 특허청장 금상받은 최고의 아이디어
등산, 낚시 등 아웃도어 시장, 개인소비자를 상대로 한 대형마트, 이를 다루는 치과, 보험회사, 증권회사, 어린이집, 유치원, 미용실, 네일아트, 화장품회사 등 판촉시장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제품으로 급부상하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는 중국, 미국, 일본,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손가락을 사용해 음식을 먹는 이슬람권 등을 상대로 현재 활발한 영업과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메가톤급 계약이 성사될 수 있는 흐름도 감지되고 있다. 이처럼 위생 비닐장갑 <핑거캡>으로 ‘식탁 위의 혁명’ ‘전 세계 4번째 음식도구’ ‘최후의 음식도구 발명’ 등의 찬사를 받는 이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어떻게 해서 이 기가막힌 음식도구를 만들게 됐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박람회와 전시회 등을 통해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한 <핑거캡>의 주인공 (유)삼손과글로벌의 박종현 대표(51)를 의왕시 오전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일단 <핑거캡>은 전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상품이다. 경쟁제품이 없고 가격도 20원대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어 대중성이 강하다. 물론 A/S도 필요 없는 상품이다. 총판의 경우도 별도의 매장이나 인테리어 비용 없이 곧 바로 시작할 수 있다. 단 하나, 오래된 식습관 문화를 바꾸는 일인 만큼 시간은 조금 걸릴 것이라 생각한다. 고무장갑이나 크린랩 같은 비닐장갑이 시중에 나왔을 때 처음에는 한 두 명이 사용한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요즘엔 모든 사람이 사용하지 않는가. <핑거캡>이 바로 그런 제품으로 거듭날 것으로 확신한다.”
묵직하다. 뚝심이 여간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파장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그러나 어쩐지 이상하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첫 대면에 버겁다는 느낌으로 부담이 된다. 하지만 다르다. 그 이면의 궁금증을 촉발시켜 알고 싶게 만드는 독특한 매력이 풍겨온다. 그래서였다. 비움의 행간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과의 접촉이 굵되 결코 간단치가 않다. 쉬운 길을 걸어온 이가 결코 아니라는 메시지여서일까.
자신에 찬 확신이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 묻어 뚝뚝 떨어진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묘하게 얽혀 있는 이들은 조율에 능하다. 달리면서 담금질한다. 완벽의 고삐를 수시로 조인다. 그래야만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그가 지금 세계를 상대로 무대에 섰다. 확신 100%다. 이제 손에 쥐는 것만 남았다.

묵직한 뚝심에 한 번 결심한 일은 반드시 이뤄내
박종현 대표의 고향은 전북 익산이다. 8남매 중 막내인 그가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학자의 꿈을 펴보지 못하고 사업을 펼쳤던 부친의 부도로 집안은 급속도로 쇠락의 길로 들어선다. 훗날 교편을 잡게 되는 큰 형이 집안의 기둥이 돼 집안일을 도맡아 하게 된다. 박 대표는 학교 시절 공부를 꽤 했다. 꿈이 법조인이었다. 그래서 법대를 희망했다. 하지만 고시생활의 뒷바라지를 할 형편이 못 되는 형의 사정으로 우여곡절 끝에 3수만에 K대 법대를 차석으로 입학한다. 그의 집념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사건이다. 어떤 일에 매진하면 중도에 포기 없이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불사르는 스타일이 바로 그다. 그의 법조인에 대한 열망은 어떻게 보면 이 당시가 시작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입학하자마자 사법고시에 몰두한다. 그러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외활동을 병행한다. 대학 재학 중에 고시에 합격할 목적으로 공부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는 고시생활로 취업정년인 28세를 놓쳐버리게 된다.
그러던 사이 그가 대학 다니며 했던 과외 아르바이트가 그룹과외로 확대되고 이것이 다시 조그만 보습학원으로 연결돼가고 있었다. 그가 15년 동안 학원사업에 몸담게 되는 배경이 될 줄이야 그 당시에는 알았겠는가. 용인에서 시작한 학원사업은 시간이 지나면서 규모가 조금씩 성장해 갔지만 경영은 늘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돈 계산에 약한데다 교육자에 대한 진지한 열의가 한창 끓어오를 때인지라 가난하고 딱한 학생들에게 훗날 갚으라고 하고 학원수업을 무료로 듣게 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
특히 1997년 12월 IMF를 거치면서 그가 학원 수강료로 받지 못한 돈이 거의 1억6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모르게 부모들에게 1만원이든 5000원이든 성의를 표하라 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였다. 그래도 박 대표는 어려운 경제 사정에 학생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학원으로 공부하러 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교육 사업에는 누군가 손해를 볼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법조인에 대한 열망, 학원사업 그리고 15년
이렇게 학원사업을 하면서도 그는 그동안 틈틈이 해왔던 고시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시간이 날 때마다 매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앙에 귀의하게 되고 독실한 신자가 됨으로써 세상을 보는 눈이 변하게 된다. 부자와 잘 사는 것의 차이, 가난한 것과 못사는 것의 간격, 나를 위한 공부와 남을 주기 위한 공부 등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그의 나이 마흔을 바라보는 시점이었다. 그는 고시 공부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떨치고 이웃에 눈을 돌리게 된다.
“고시공부로 시작한 과외가 발전해 학원사업에까지 진출하게 됐다. 하지만 고시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늘 마음 한 구석은 갑갑했다. 그래서 공부도 이어서 계속하게 됐는데 결국 둘 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그러다 신앙을 알게 됐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도 덤으로 얻게 됐다. 다시 말하면 새롭게 인생관을 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 같다.”
그는 이후 학원사업을 하면서 노인대학에 출강해 500여명의 노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등 봉사활동을 활발히 펼치게 된다. 그러나 학원사업의 경영이 갈수록 악화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자 결국 문을 닫는다. 그가 학원사업에 손을 댄 이후 15년만의 일이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청춘을 다 바치고 불살랐던 업이 아니던가. 잠시 눈을 감았다.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주~욱 비추며 지나갔다. 비록 돈은 못 벌었지만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편지를 주고 간 학생과 부모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고맙고 행복하고 힘들었던 모든 것을 뒤로 하는 순간, 그에게는 1억2000만원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빚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그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가 강고하다. 주위에서는 파산신청을 하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신용회복을 지원했다. 그리고 7년에 걸쳐서 매월 120여만원의 돈을 갚아나갔다. 작년에서야 모든 빚을 청산했다.
은행 담당직원과 주위사람들 모두는 그의 이같은 노력과 의지, 그리고 갚고야 말겠다는 신념에 감복하고 만다. 박 대표는 학원 일을 그만둔 후 본격적으로 교육운동에 뛰어든다. 안양시 학교 운영위원장 협의회장, 안양 과천 중·고등학교 교복 공동구매 연합 대표 등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지난 2010년에는 교복공동구매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에게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배려 1억2000만원의 빚,
7년에 걸쳐 모두 갚아
당시 그는 대형업체들의 각종 횡포와 감언 그리고 협박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 특유의 적극적인 추진력과 포용력으로 이를 무난히 넘기고 성사시키는 등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용인의 학원사업을 그만 둔 이후 지인의 소개로 충무로에서 출판 편집 분야의 일을 맡아 활동을 하게 된다. 1년여 동안 S건설에 판촉물을 납품하는 등의 업무를 보면서 수원 쪽 학원의 부원장으로 영입이 돼 학원일도 병행하게 된다. 그리고 학원사업을 하면서 진 빚을 갚기 위해 그룹과외도 세 군데를 뛰며 활발히 활동한다. 특히 취직하게 된 학원에서는 박 대표의 인성과 성실성 그리고 학원 운영의 경륜 등을 인정받아 1년만에 학원장으로 승진되고 뒤이어 강사 20여명을 둔 대형학원을 차린다.
하지만 학원이 흑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업한 친구의 결정적인 실수로 문을 닫는다. 이렇게 학원사업을 그만둔 후 2년 가까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무렵 그의 인생을 뒤 흔드는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인생 터닝포인트로 작용한다. 그는 평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병 줍기, 장애인 돕기, 노인대학 잔심부름 등 봉사활동을 가르쳐 왔다. 박 대표의 아들은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싸움 잘하고 운동 잘하는 아이로 잘 알려진 터였다. 그런 아들이 싸움에 잘못 끼어들어 갑자기 옆에서 날아온 주먹에 크게 다쳐 3일 만에 깨어나는 어려운 상황을 맞는다.
아들은 의식을 차리고 일어나면서 ‘싸운 애들을 용서해 달라’는 말을 던진다. 박 대표의 가슴은 미어졌다. “어린 게 무엇을 안다고.........” 평상시 착하게 살라는 가르침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또 한 번 가슴이 저렸다. 그 후 박 대표는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친구의 죽음과 맞닥뜨린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그것도 법학과까지 함께 다닌 죽마고우인 친구가 고시공부를 하던 고시원에서 죽은 지 10일만에 발견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다.
박 대표는 자신이 고교 동문회장으로 있을 당시 고시공부를 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거둬 그의 생활을 돕곤 했다. 하지만 친구는 거듭된 낙방에 실의의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아들과 친구의 사건이 동시에 겹치면서 자신의 삶을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아는 목사님을 만나기 위해 싸움한 아들의 친구들을 데리고 통영으로 가던 중 차에서 불이 나고, 당시 수리비가 너무 비싸 죽은 친구의 형한테 전화를 해서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아들의 사고와 죽마고우의 죽음이 가져온 터닝포인트
그는 장례식 이후 두 번째 만난 친구의 형과 저녁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녘에 잠이 든다. 10분쯤 잠이 들었을까. 죽은 친구가 꿈에 나타나 하는 말이 “너 이제 날 잊어라” 라고 하면서 “니 인생이 며칠 있으면 바뀔 것이다. 그러니 날 못 도와준 걸 미안하게 생각마라” 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한 연구소에서 일하는 초등학교 친구의 지인이 모임에 가위로 오린 핑거캡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져온다. 친구들이 다들 “이게 뭐냐”하고 신기해하면서도 사업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인은 개발을 해놓고도 판로를 찾지 못해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박 대표는 느낌이 달랐다. 첫 눈에 “아! 이건 물건이다.” 기가 막힌 제품이란 걸 한눈에 알아봤다. 그리고는 친구의 꿈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불과 열흘도 안 된 상황이었다.
친구가 꿈결에서 ‘니 인생 며칠 있으면 바뀔 것이다’라고 말한 게 떠올랐다. 잘만 가다듬으면 분명 음식 문화에 새로운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 인생 며칠 있으면 바뀔 것이다”
<핑거캡>을 보다
구정 날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던 중 그는 미완성품인 <핑거캡>을 꺼내 보여줬다. 대박이 날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하지만 그는 학원사업의 쇠락으로 여유가 없었다. 결국 가족들이 특허를 받는 조건으로 투자를 하게 된다. 3개월 정도로 시한을 정했다. 일단 친구의 지인으로부터 제품에 관련된 모든 권리들을 인수했다. 그리고 나서 장장 3년 6개월 동안을 연구 개발에 다시 투자했다. 시장에서 받아줄만한 상품으로 거듭나려면 가다듬어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개발비에만 모두 13억원이 투입됐다. 이 모든 자금이 투자자들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상품성을 알아본 투자자들이 흔쾌히 지분을 사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권한 결과였다. 제품의 디자인은 외국에서 이뤄졌다. 지금은 전 세계 20여국에 수출을 하기 위해 상담이 이뤄졌고 진행중이다. 국내에도 총판점을 모집한 결과 현재 55개가 전국에 깔려 있을 정도다. <핑거캡>은 음식을 먹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고 알리는, 일종의 문화사업이다.
그것도 특히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패스트푸드를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먹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제품이다. <핑거캡>의 가장 큰 장점은 치킨처럼 뼈가 붙어있는 굵은 음식을 손쉽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치킨집 시식회 장소에 가면 젓가락, 이쑤시개 등을 사용해 불편을 느낄 때가 많은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불편은 <핑거캡> 하나면 ‘만사 OK’다. 엄지, 검지, 중지 등 세 손가락에 씌우는 비닐장갑 <핑거캡>은 4년 가까운 기술 개발을 거치면서 손가락 끝 면을 돌기로 만들어 미끄럼을 방지하고 물건에서 전이되는 뜨거움을 차단토록 함과 동시에 살균처리가 가능해 간단한 사용과 함께 위생적인 면에서 그만이다. 손가락 삽입부 면에는 주름공간을 만들어 착용감과 통기성을 높인 점도 눈에 띈다.
특히 손톱을 보호해야 하는 여성, 젓가락질이나 포크질이 서툰 아이들한테 인기가 뜨겁다.
게다가 손을 사용해 음식을 먹는 인도, 아랍, 아프리카 등의 문화권은 중요한 잠재적 수요층이다. 무엇보다도 치킨을 먹을 때 물티슈나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이득이다. <핑거캡> 1개가 20원대 정도다. 모방품이나 유사품이 나올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러한 제품을 만드는 공장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고 설비 1개를 갖추는 데에도 5억원 가량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13억원 들여 4년 가까이 개발, 20년 특허와 세계특허 출원 중
20년 특허를 받은 디자인은 다시 새롭게 나오기 어렵다. 보통의 장갑은 보통 누워 있는 형태이나 <핑거캡>은 세로 방향으로 세운 장갑이다.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라 부담이다. 자칫하면 불량품을 양산할 수도 있어서다.
결국 유사품을 만들기 위해 수십억원을 들여 참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박 대표는 올해 안으로 전국민의 <핑거캡> 인지율을 목표의 20%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또 내년 야구시즌의 대미를 장식하는 코리안 시리즈에서는 썬 캡을 만들어 제품과 함께 제공할 계획이다.
TV화면을 통해서 전 국민들에게 음식문화의 혁명을 펼쳐 보이겠다는 각오인 것이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마케팅은 실로 다양하다. 전국 대학교 20곳을 선정해 <핑거캡>을 5개씩 넣어 무료로 배포하고 음식점에서 이미지를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이들에게는
유학 혜택을 제공할 계획이며 네일아트 숍의 선물 아이템도 기획하고 있다. 현재 <핑거캡> 제품은 세 개짜리 일반 사이즈에 포장 방법을 달리해 리필용, 업소용, 개인휴대용 등 일곱 가지가 판매되고 있다. 여기에다 이슬람 문화권을 상대로 한 네 손가락, 과자나 떡 등에 필요한 두 손가락, 그리고 마지막에는 독립된 한 손가락을 개발해 각각 필요한 만큼 빼내서 쓸 수 있는 제품으로 완성시킬 각오다.

해외서만 내년이면 약 500억원의 매출 예상.....총판에 앞다퉈 몰려
그 과정에서 어린이용, 특대용, 칼라용 등 다양한 제품군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이로 인해 기획된 대로 제품들이 완성이 된다면 100여종이 넘는 다양한 제품이 고객들을 만나러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총판 모집은 별도의 비용 부담없이 인구 30만을 기준으로 보증금 2000만원만 있으면 되고 2년간 독점권을 준다. 물론 보증금은 다시 돌려준다. 현재 55개의 총판점이 있다.
내년 해외의 판로 개척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중국, 이탈리아, 일본, 미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러시아 등에서 모두 500억원의 매출이 예상되고 있다. 박 대표의 미래 청사진은 무엇일까.
“사실 이번 기회에 전 세계의 음식문화를 한 번 바꿔보는 이단아적인 혁명을 꿈꾸고 있다. 숟가락, 젓가락, 포크로 해결이 안 돼 병균이 묻어 있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 후진적인 관행을 <핑거캡>이 해결해 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시간의 문제일 뿐 일정기간이 지나면 전 세계의 제 4의 음식도구로 분명히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대용품도 이 제품과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절대 필요한 발명품이라 자부한다.”
그의 확언이 현실로 연결돼 고무장갑이나 크린랩처럼 일상품으로 자리 잡으려면 대략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건 온전히 박 대표의 능력에 달려있지 않을까 싶다. 그가 갑자기 커 보이기 시작한다. 제 4의 혁명을 꿈꾸는 이는 그렇게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글  이덕철 발행인  사진  박세웅 팀장 케리커처  원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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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화 2021-06-28 14:45:45
혹시 핑거캡 (세손비닐장갑) 구매가능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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