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에 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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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에 건 인생
  • 곽은영 기자
  • 승인 2022.02.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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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성생활과학 <솥밥대통령> 박인성 대표

외식업에서는 ‘밥맛’이 중요하다. 빠르고 맛있게 밥을 짓는 전기솥밥기를 개발해 솥밥 시장을 개척한 <솥밥대통령> 박인성 대표는 쌀과 밥에 있어서 최초라는 신화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전기솥밥의 원조인 그는 쌀 전문가이자 기계 전문가로 살아왔다. 솥밥 하나만큼은 <솥밥대통령>이 최고라는 그의 자부심과 자신감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주)인성생활과학 솥밥대통령 박인성 대표 ⓒ  사진 유흥선 기자
(주)인성생활과학 솥밥대통령 박인성 대표 ⓒ 사진 유흥선 기자

 


(주)인성생활과학의 <솥밥대통령> 슬로건은 ‘식당밥, 무조건 맛있어야 한다’이다. 밥은 언제 가장 맛있을까. 갓 지었을 때다. 박인성 대표는 식당에서도 밥을 갓 지어 손님상에 낼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이제는 가정에서도 그 맛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움직임의 폭을 더 넓히고 있다. 밥맛에 인생을 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현장 조리장들이 인정한 밥맛
박인성 대표가 솥밥 사업을 시작한 지도 12년이 됐다. 2000년대 즉석 도정 사업을 시작으로 전국 단위 정미소 사업을 하다 솥밥 사업에 뛰어들게 된 건 순전히 ‘밥맛’ 때문이었다. 아무리 즉석 도정을 해서 질 좋은 쌀을 판매하더라도 밥을 갓 지어서 바로 먹지 않으면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를 쌀 전문가에서 기계 전문가로 진화시켰다. ‘이만솥’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밥을 지으며 솥밥을 연구개발해 온 그는 결국 쌀과 기계의 궁합을 맞추는데 성공했다. <솥밥대통령>은 현장과 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여러 모델을 갖추고 지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솥밥 시장을 만든 창시자로서 그는 지금도 시장점유율을 70~80% 유지하고 있다. <솥밥대통령>이란 이름도 현장 조리장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다. 과거 대형고깃집 수도권 조리장들을 대상으로 그가 밥에 대한 강연을 하고 직접 밥을 지어 맛을 보였을 때 “뭔 말이 필요해, 밥에는 이 분이 대통령이네”라는 말이 흘러나온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브랜드 상표출원에 들어갔고 등록까지 완료했다. <솥밥대통령>이란 상호에는 현장 조리장들이 인정한 밥맛이라는 자신감과 그의 아이덴티티가 함께 들어가 있다.

 

(주)인성생활과학 솥밥대통령 박인성 대표 ⓒ  사진 유흥선 기자
(주)인성생활과학 솥밥대통령 박인성 대표 ⓒ 사진 유흥선 기자

발로 뛰어 만든 원스톱 시스템
그는 모든 것을 직접 했다. 즉석 압력솥을 만들었고 각 업소를 방문해 영업을 했다. 밥 한 공기를 잘 만들기 위해 왜 고가의 장비를 써야 하는지를 알리기 위해서 직접 글을 써서 신문광고를 하며 홍보마케팅도 적극적으로 했다.

광고를 보고 공감을 한 점주가 연락이 오면 직접 시연용 기계 한 대와 좋은 쌀 한 가마니를 들고 가 그곳에서 밥을 지어 기존 밥과 비교해가며 밥맛의 차이를 증명했다. 월 약 1만km를 찍으며 발로 뛰었다닌 시간은 그의 자신감의 뿌리가 됐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살뜰하게 챙기는 그는 “대한민국에서 대기업을 빼놓고 제조부터 마케팅, 판매, 영업, 설치, 교육까지 원스톱으로 끝내는 회사는 많지 않다”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솥밥대통령>은 공장 등록은 물론, 기업부설연구소도 갖추고 있다. 최근에 준공한 김포 공장은 가정용 시장에 본격 뛰어들기 위한 초석이 될 예정이다. 향후 홈쇼핑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것이다. “식당밥뿐만 아니라 ‘밥은 무조건 맛있어야 합니다’로 바뀔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그의 목표는 집에서도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바른인성과 이유 있는 자신감
그는 어려운 이웃들도 살뜰히 챙기고 있다. 몇 년 전 친구들 모임에서 남은 돈을 모아 관악구 보육원에 방문한 것이 시작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식료품을 화물차에 가득 채워 직접 몰고 갔다. 베품을 통해 위안 받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임을 느낀 시간이었다. 이후 매년 필요한 곳에 기부를 하고 있다. 경기가 어려울 때도 ‘내가 어려운데 그분들은 얼마나 어려울까’라는 생각으로 나눔을 이어갔다.

지난 2년의 코로나 팬데믹에도 나눔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선장인 자신의 마음부터 가다듬으며 사업을 재정비했다. 가정용에 치중하는 한편, 백신접종률 70% 도달까지 업소용 제품을 30% 할인하는 7030캠페인을 진행했고 1년 후 사업을 정상화시켰다. 그의 방점은 큰 돈을 버는 것보다 회사다운 회사를 만드는 데 찍혀 있다.

그가 사업적으로 사회적으로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 힘은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였다. 박 대표는 “아버지는 제게 바른사고, 바른정신, 바른인성을 가르쳐주신 분”이라며 “자갈밭에 던져놓으면 자갈을 팔아서라도 살 사람으로 자신감 있게 키우셨다”고 말했다. 그가 앞으로 또 어떤 밥맛 있는 세상을 펼쳐놓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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