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소상공인들 “이러다 다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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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소상공인들 “이러다 다 죽어요”
  • 김지원 기자
  • 승인 2021.10.12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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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들의 시위와 극단적 선택

지난달 7일, 맥줏집을 운영하던 50대 자영업자가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에 극심한 경영난을 버티다 지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1인 시위, 심야 차량 시위를 통해 살려달라는 외침을 이어가고 있다. 

ⓒ 사진 김지원 기자, 전국자영업자비대위 제공
ⓒ 사진 김지원 기자, 전국자영업자비대위 제공

 


23년 차 자영업자의 비극
1999년부터 맥줏집, 일식주점, 한식뷔페 등 23년간 자영업을 해오던 A씨는 코로나19로 영업에 직격탄을 맞으며 월세와 직원 월급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살고 있던 원룸을 빼고 지인들에게 빌려 마지막 월급을 주고는 세상을 떠났다.

숨진 A씨는 자영업을 해오는 동안 직원들에게 업소 지분을 나눠주고 주 5일제를 시도하거나 연차를 만드는 등 직원들을 아껴왔으며, 한식뷔페를 운영할 땐 복지재단에 음식을 보내고 후원을 아끼지 않는 등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행보가 드러나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지속되는 코로나19와 길어지는 방역 규제에 자영업자, 특히 야간 시간에 영업하는 업종이 큰 타격을 받으며 몇몇 자영업자들은 아르바이트생 없이 ‘나홀로 사장’이 돼 가게를 지키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기까지 이르는 상황이다.

ⓒ 사진 김지원 기자, 전국자영업자비대위 제공
ⓒ 사진 김지원 기자, 전국자영업자비대위 제공

 

전국 곳곳 심야 차량 시위 행렬 이어져
지난달 8일에서 9일로 넘어가는 늦은 밤, 전국 9개 지역에서 비상등을 켠 차량들이 4차선을 따라 행진을 이뤘다. 이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연장에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이 심야 차량 시위를 도모한 것이다. 모든 매장이 문을 닫은 23시부터 새벽 1시, 자영업자들의 호소 담긴 SOS 경적이 울려 퍼졌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이하 자대위)가 주최한 이번 시위는 서울, 경기, 충북, 대전, 경남, 부산 등 전국 자영업자들이 각지에서 각자의 차량으로 행렬을 이루며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서울은 오후 11시부터 양화대교 북단, 강변북로, 한남대교, 올림픽대로를 따라 시속 20~40km 수준으로 서행하며 이어졌다. 자대위에 따르면 서울·경기지역에서 4,000여대, 8개 지역에서 1,000여대 등 총 5,000여대의 차량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추산했다.

이날 경찰은 차량 시위 동선 곳곳에 경찰 오토바이와 순찰차를 배치하고 시위를 통제했다. 최종 집결지인 여의도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경찰이 차량 통행을 막고 검문을 시행해 시위 차량 운전자와 경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서는 1인 시위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집회·시위가 금지되는 규정에 따라 비대위의 차량 시위 역시 불법 집회로 판단해, 서울교를 비롯한 여의도 진입로에서 “비대위의 차량 시위는 미신고 집회로 감염병예방법 위반에 해당하니 회차해서 해산하라”라고 방송하며 검문을 진행했다.

ⓒ 사진 김지원 기자, 전국자영업자비대위 제공
ⓒ 사진 김지원 기자, 전국자영업자비대위 제공

 

시위의 목적은 현행 방침 철회
지난 7월에 이은 이번 3차 시위에서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분명했다. 정부의 현행 거리두기 방침 철회를 촉구하는 것. 자대위는 지속적으로 시위를 통해 ▲개인방역 중심으로 방역지침 전환 ▲신속한 손실보상 ▲자영업자의 손실보상 위원회 참여 등을 요구하고 있다. 1년 6개월 넘게 매출 감소를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상황 개선을 위함이다.

자대위는 지난달 3일 입장문을 통해 “자영업 시설을 통한 감염사례가 20%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권고가 아닌 규제로 자영업자들을 방패막이로 사용해왔다”며 “그간 해이한 대처로 체제 변환을 준비 못한 방역 당국의 책임과 백신 확보에도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왜 자영업자들만이 계속해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방역 실패의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더 큰 확산을 방지하고 있다는 얄팍한 말장난으로 국민을 조롱하고 있다”며 “자영업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해 놓고 업종별 요구 사항 및 환경 개선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일방적 연장 통보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소상공인보호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이달 8일 손실보상심의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의위는 중기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두고,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와 소상공인 관련 단체, 학계, 법조계 등에서 뽑힌 인물들로 구성된다. 중기부는 심의위에서 세부 기준을 결정해 이르면 이달 말 손실보상금 지급을 시작할 계획이다.

ⓒ 사진 김지원 기자, 전국자영업자비대위 제공
ⓒ 사진 김지원 기자, 전국자영업자비대위 제공

 

가족들 덕에 버티는 자영업자들
코로나19는 야간 자영업자들의 행복을 송두리째 뽑아갔다. 직원을 자르고, 가게를 닫고, 투잡을 뛰어가며 버티고 있지만 본전은커녕 빚만 늘어가는 현 상황은 삶의 끝에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홀로 가게를 지켜가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가족들을 보며 살아간다.

서울 천호동에서 6년간 노래주점을 운영한 자영업자 B씨는 1년 5개월째 가게 문을 닫게 되며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집합 금지 전만 해도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매일 대기줄을 세우는 동네 유명 사장님이었다. 유흥시설 집합금지 명령에 1년 넘게 문을 닫게 되고 일을 구해보지만 2주씩 연장해오는 방역 규제에 물류센터에서 단기로만 일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직후 영업시간 제한으로 매출이 10분의 1로 토막 났었지만 그나마도 영업을 할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는 B씨. 최근 우울감에 힘들다가도 “언제 문 여세요?”, “빨리 가고 싶어요”라는 단골들의 연락에 열심히 버티고 있다. 자신의 차량까지 팔아서 생활고를 버티고 있는 B씨는 심야 차량 시위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7살 아들과 함께 자영업자 합동 분향소에 다녀왔다.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데려간 그곳에서 절을 하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젤리를 두고 오고 싶다며 젤리로 위로를 전하는 유치원생 아들을 보며 또 한 번 삶의 의지를 다졌다.

경기도 부천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C씨는 심야 차량 시위 도중 고등학교 1학년 자녀에게서 사진 한 장을 받고 눈물을 쏟았다. 정부에, 국민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며 딸아이가 보낸 사진에는 ‘우리 아빠 좀 살려 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부모의 힘듦을 보고 느끼는 고1 딸의 마음이 담긴 사진에 태어나 가장 많이 울었다는 C씨. 아이 때문에 쉽게 죽지도 못 한다는 그는 아이들이 자영업자들의 잇따른 자살 뉴스를 보고 자신의 부모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안타깝다.

현재 맥줏집을 운영하던 자영업자 외에도 농자재 배달사업에 실패한 뒤 실종됐던 40대 남성이 3개월 만에 숨진 채 발견되는 등 자영업자의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자대위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자영업자는 최소 22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대위는 지난 16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 합동 분향소를 마련해 떠나간 소상공인들의 넋을 추모했다. 합동 분향소 설치 과정에서 경찰의 강력한 제지가 이어져 대치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에 경찰의 과잉 진압이라는 의견과 시위 단체의 공무집행 방해라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 사진 김지원 기자, 전국자영업자비대위 제공
ⓒ 사진 김지원 기자, 전국자영업자비대위 제공

 

소상공인을 위한 단체들의 노력
누구보다 힘겨운 한때를 보내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외식업 관련 단체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는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외식업권 수호를 위한 전국 동시 1인 릴레이 시위를 진행했다. 시위 내용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연장에 따른 심야 영업시간 제한 철회를 요구하는 것으로, 각 지역마다 ‘우리도 살고 싶다’, ‘영업시간을 연장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이후 코로나19의 악화로 정책이 지속되자 한국외식업중앙회 전북지회는 지난달 23일 전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벼랑 끝에 있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시위를 통해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들은 치솟는 임대료와 인건비로 어려움은 가중돼 문을 닫는 업소는 늘어갔고, 폐업을 고려하는 업소도 전체 40% 이상인 상황이라며 야간 영업이 필요한 업소의 피해에 대한 손실보상과 지원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현재 전주는 3단계 거리두기로 오후 10시 이후 영업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정책적 건의를 통해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협회는 지난 4월 전국가맹점주협의회와 업계 상생문화 확산과 동반성장을 위해 ‘2021년 프랜차이즈 상생협의회’를 구성했다. 상생협력 노력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본사와 가맹점의 상호협력을 기반으로 정부와 업계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협회 관계자는 “협회는 간담회 등을 통해 끊임없이 업계의 애로사항을 건의하고 정책적 개선을 위해 의견을 내고 있다. 전국의 수많은 자영업자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영업을 하다가 모였을까 안타까움이 가득하다”며 “협회도 방법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상황을 바꿔나가기 위해 더욱 노력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 사진 김지원 기자, 전국자영업자비대위 제공
ⓒ 사진 김지원 기자, 전국자영업자비대위 제공

 

전문가 “실질적 도움 장치 필요”
창업 시장은 코로나19로 IMF 때보다 심각한 피해를 겪고 있다. 특히 집합금지로 인원을 제한하고 영업시간을 제한당한 외식업의 피해는 엄청나다. 2년 가까이 피해를 끌어안고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창업 전문가 스타트비즈니스 김상훈 소장은 자영업자들 편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익을 위한 단체가 아닌 자영업자들을 대변해주고 시장을 조사·분석해 대안을 연구해주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교육을 위한 교육, 컨설팅을 위한 컨설팅이 아닌, 개인의 행복과 미래가치에 기반해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그는 자영업자들을 위로할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70만 자영업자들은 외로운 상황입니다. 동료 없이, 기댈 곳 없이 홀로 버텨나가는 상황이 닥치다 보니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에겐 전통시장 상인회 같이 정보 교류도 하고 서로 도닥이고 힘을 낼 수 있는 완충 장치가 없습니다. 서울시 다산콜센터처럼 ‘자영업자 콜센터’를 만들어 목소리를 들어주고 한마디라도 조언해줄 수 있는 전문가 네트워크를 갖춰 최악의 상황에 놓인 그들에게 최소한의 조언과 팁을 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어 김 소장은 위드코로나로 전환되더라도 단체 회식 시장이 돌아오긴 어려울 것이라며 대형 외식점포 창업을 만류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서 내공 있는 창업자들만이 살아남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쉽고 빠르게 창업을 시작하는 예비창업자들에게 경각심을 지닐 것을 경고했다.

어떤 자영업자는 오히려 장사가 잘 된다 하고, 어떤 자영업자는 하루 버티기도 힘들어 곧 죽을 것 같다고 한다. 모든 자영업자들이 힘든 상황이라고 판단하긴 어렵다. 업종별, 지역별, 상권별, 아이템별로 상황이 다르고 특히 업종별 피해 편차가 심하다. 주류 업계, 서울 상권이 최악의 상황을 치닫고 있음에도 관광지와 유명 가게들은 방문객으로 붐비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괴로움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폐업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과도한 방역 규제,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 기댈 곳 없는 나홀로 싸움에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의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정부와 단체들은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 약속이 아닌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고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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