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러운 정취가 살아있는 소담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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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러운 정취가 살아있는 소담한 공간
  • 곽은영 기자
  • 승인 2020.09.14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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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Ⅰ도시를 걷다 만나는 ‘모던 한옥’ :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서대문 영천시장을 가로질러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정취가 느껴지는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노란 조명이 새어나오는 이곳에는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라는 작은 간판이 달려 있다. 그 아래 나무문에는 ‘서점+카페’라는 친절한 손글씨가 쓰여진 종이가 붙어 있다. 이 소담한 북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 봤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사진 업체 제공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사진 업체 제공

 

80년 넘은 한옥에 흐르는 시간
북카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1937년 지어진 한옥이다. 한옥 뒤에 위치하고 있는 100년이 넘은 석교감리교회와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이곳에서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는 인상도 받는다. 지난 80여년의 세월 동안 여러 사람이 거쳐간 한옥은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오래된 한옥을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건 박현여 대표와 그녀의 남편 이장희 작가다. 이장희 작가가 발견한 오래된 한옥을 보며 그동안 꿈꾸던 책방을 하기에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 박 대표는 2018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부부는 인테리어 공사를 통해 집의 구조와 공간의 역할을 바꿔 나갔다. 기존 기역자 모양의 건물을 별채와 합치고, 창고 역할을 하던 다락은 두세 명이 올라가 쉴 수 있는 좌식 공간으로 꾸몄다. 그 아래 부엌이었던 곳은 ‘작가의 방’이라고 불리는 독립된 공간으로 바꿨다.

공간의 역할에는 변화를 줬지만 창틀, 외벽 등은 과거 모습 그대로다. 기둥과 서까래도 깎아내기만 하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같은 한옥이라도 완전히 새 것처럼 고친 집이 있는가 하면 예스러운 공간을 살린 곳도 있는데 우리는 옛 정취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규모가 큰 한옥 카페는 실내를 모던하게 꾸미는 경향이 크지만 작은 공간은 옛 것을 최대한 남기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사진 업체 제공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사진 업체 제공

 

한옥을 고쳐 쓰는 어려움과 즐거움
지난해 3월 문을 연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북카페이지만 서점으로서의 역할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이장희 작가가 소장한 아트북과 박 대표가 직접 고른 책들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이곳에는 길고 큰 테이블이 시원하게 놓여 있다.

그 위에 매달린 동그란 조명등도 공간과 조화로운데 실제 조명 하나도 한옥에 어울리게 신중하게 선택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트렌디한 가늘고 긴 조명을 테이블 위에 붙였는데 선이 많은 한옥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오픈 전 다 떼어내고 지금의 형태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한옥 특유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시공 시 어려움이 따르기도 했다. 일단 한옥을 다루는 전문가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고 직사각형 등 각이 정확히 나오지 않는 집이라 그 미세함을 맞추는 데에도 더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주춧돌이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가구 배치에 애를 먹기도 했다. 어려운 요소들을 하나씩 해결하며 완성된 공간을 그 누구보다 반겨준 건 주민들이었다. 박 대표는 “익선동, 서촌, 북촌 등 한옥이 많은 곳에서 보는 한옥 카페와 달리 주택가에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한옥 공간이 있다는 것에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사진 업체 제공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사진 업체 제공

 

동네 책방이자 사랑방
동네 책방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올해 코로나19로 예상치 않게 일시적으로 문을 닫기도 했다. 박 대표는 이 시간을 불안하게 보내는 대신 살뜰하게 활용하는 것을 선택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던 2월 1~2주간 영업을 하지 않고 온라인 스토어 준비를 했다”고 말하는 그는 “근처 도서관도 모두 문을 닫았던 때라 오히려 온라인으로 도서 주문을 받으면서 도서 매출이 늘어나 줄어든 카페 매출을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과 함께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등 모임의 장소로서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낮 12시에서 5시까지 짧게 문을 여는 대신 다른 시간은 모임 장소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표는 “모임을 마치고 ‘책방을 알게 되어서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을 맞이할 때는 우리집에 초대한다는 느낌으로 맞이하려고 하는데 손님들이 그런 정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가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사진 업체 제공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사진 업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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