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럽고 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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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럽고 후하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1.06.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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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길 밀영> 김규완·한미영 대표

창업은 ‘자급자족 생활’이라는 김규완 대표&한미영 대표. 시간과 돈에 대한 가치가 더욱 크고 밀도있게 느껴진다는 두 사람은 고객이 기뻐할 때 함께 뿌듯한 기분을 느낀다. 중환자실에 있다가 퇴원한 고객이 <소월길 밀영>의 구움과자를 찾아왔을 때, 음식은 먹을거리 그 이상의 의미라는 걸 알게 된다.

소월길 밀영 김규완·한미영 대표  ⓒ 사진 김효진 기자
소월길 밀영 김규완·한미영 대표 ⓒ 사진 김효진 기자

 


후암동 종점, 고깃집 위층, 나무에 가려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양과자점 <소월길 밀영>은 어느새 ‘후암동 핫플레이스’로 꼽힌다. 2013년 오픈 후 ‘후암동에서 꼭 가야 할 카페’, ‘양과자 마니아의 성지’ 등 타이틀이 많아진 <소월길 밀영>은 김규완 대표와 한미영 대표 부부가 운영하는 양과자점이다.  

 


기다리다 
<소월길 밀영>은 창업 환경으로만 따지면 C급이지만 2013년 오픈 후 지금까지 10년에 가까워지는 장수 점포다. 김규완 대표는 장수를 누리는 비결에 대해 ‘대박을 꿈꾸지 않았고 운도 따랐다’고 얘기했다. “처음부터 크게 돈 벌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구움과자 시장이 커졌고, 후암동이 핫한 동네가 되면서 유동인구가 늘었지만 그때가 오픈할 적기는 아니었어요. 창업하고 안정되기까지 최소한 1년은 기다려야 해요. 우리는 직원도 두지 않았고, 초반에는 제가 아르바이트를 따로 해서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게으르게, 천천히 흘러온 겁니다. ”

김 대표는 <소월길 밀영>이 창업모델로 적절하지 않다면서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라야 가능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거창하게 시작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데이터를 분석해서 치밀한 마케팅 전략을 만들지도 않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택하는 대신 천천히 사업이 궤도에 오르길 기다린다.

 

맛있는 양과자 만들기
아내 한미영 대표가 과자를 만들면 남편 김규완 대표가 팔고 홍보하고. 그렇게 함께 하게 될 거란 비전은 있었지만 예상보다 시기가 빨랐다. “마흔살에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대기업에서 부장까지 했으니 아쉽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현장 대신 관리를 맡게 되면서 일이 재미없고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무리다 싶으면서도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아서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는데, 반면 그때 아니었으면 새로운 분야에서 새 일을 시작할 엄두를 못냈을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김 대표가 대기업 다닐 때 받던 월급만큼은 번다고. 더 많은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산다는 게 돈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게 <소월길 밀영>을 운영하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이제 <소월길 밀영>의 과제는 로컬 재료를 이용한 ‘맛있는 디저트’다. 한 대표는 이번 봄에 냉이와 미나리로 만든 스콘을 선보여 펀딩에서 매진시키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맛’이다. 좋은 의도로 시작해도 결과물이 맛이 없다면 쓸 수 없으니 제철의 로컬 재료에 대한 고민이 끝이 없다. 

 

소월길 밀영 김규완·한미영 대표  ⓒ 사진 김효진 기자
소월길 밀영 김규완·한미영 대표 ⓒ 사진 김효진 기자

부부가 함께 한다는 것 
두 사람 모두 부부가 함께 창업을 하는 것에는 단점이 더 많다고 얘기했다. 같은 공간에서 사고방식과 취향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으니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하다못해 컵 하나를 선택할 때도 두 사람의 취향이 엇갈리는 일이 매일 벌어졌다.

한 대표는 이즈니 버터 등 고급 재료로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만큼 양과자의 가치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 대표는 후암동 버스 종점 근처라는 상권을 고려해서 너무 비싸면 고객이 외면한다고 주장했다.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사이인 부부도 일할 때는 영역을 나눠야 갈등을 피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카페와 공방을 나누고, 공간과 역할과 수입마저 정확하게 나누면서 더욱 돈독한 부부이자 사업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부부가 실마리를 풀어보는 방법 중 하나는 직접 해보는 것. 과자를 좋아하지만 만들어본 적은 없던 김 대표는 직접 양과자를 만들어보고야 한 대표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공임’에 대한 부분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두 사람은 <소월길 밀영>에서 만들어내는 양과자에게 적정한 가격을 찾아주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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