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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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놀이터
  • 곽은영 기자
  • 승인 2024.03.21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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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마헤어> 송근영 대표

<퓨마헤어>는 20년 넘게 동대문구 청량리 대로변 한자리에서 운영 중인 남성 전문 헤어숍이다. 원하는 머리 스타일 사진을 가져가면 그대로 해주는 곳으로 입소문이 나 있다. 송근영 대표는 손님의 머리를 만지는 일 외에 오랫동안 결식아동과 소방관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고 있다. 

퓨마헤어 송근영 대표  ⓒ 사진 이현석 팀장
퓨마헤어 송근영 대표 ⓒ 사진 이현석 팀장

 

<퓨마헤어>는 외관도 내관도 여느 미용실과는 다르다. 톡톡 튀는 색에 소박하게 걸린 ‘퓨마헤어’라는 나무 간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손님들이 가져다준 말보로 담뱃갑이 벽에 가득 장식돼 있고 자리 자리마다 개인 TV가 설치돼 있다. 격식을 싫어하고 자유분방함을 좋아하는 송근영 대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퓨마형의 놀이터
<퓨마헤어>는 2003년 ‘퓨마형’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던 송근영 대표가 지은 이름이다. 퓨마형은 당시 유행하던 브랜드인 ‘퓨마’ 신발을 신고 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로고를 머리로 하면서 생긴 별명이다. 이곳의 원칙은 손님이 원하는 머리 스타일의 사진을 갖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송 대표의 생각이다. 목적의식을 갖고 일하는 기준 덕분에 고객 만족도도 높다. <퓨마헤어> 이용 후기에는 ‘초등학생 때 이곳에서 자른 머리가 무척 마음에 들어 15년째 단골이다’와 같은 말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머리를 자르던 아이들이 성인이 돼 우연히 미용실에 들렀다가 다시 만나는 경우도 많다. 송 대표에게도 손님에게도 이곳은 자유분방하고 재미가 넘치는 놀이터다. “저는 12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였는데 학교에 다니지 않다 보니까 내 머리를 내 맘대로 할 수 있었어요.

부모님도 뭐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머리에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 더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18살에 미용 일을 시작했습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간 그는 23살에 <퓨마헤어> 문을 열었다. 


결식아동과 소방관
송 대표는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한편으로는 비행 청소년이나 결식아동을 돕고 손님 중에서도 소방관을 더 챙기면서 선한 영향력을 나눠왔다.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해서 그런지 저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일찍 일을 시작한 덕분에 눈치가 있어서 집 나온 친구, 방황하는 친구들을 금세 알아봤어요. 그냥 봐도 그들이 어렵다는 걸 알았어요. 머리를 해주고 챙기면서 자연스럽게 집을 나오거나 상황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되고 다른 곳에 가서 사고 치지 말라고 음식을 주고 미용실에서 잠도 재워주게 됐어요.”

그러나 의도가 좋다고 결과도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중요한 물건도 있는 소중한 장소를 내어준 것인데 오히려 부모로부터 욕을 먹거나 집을 나오면 미용실에서 재워준다는 소문이 돌면서 곤혹스럽기도 했다. 아이들의 구제를 위해 구청에 전화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는 힘들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봉사활동을 다니며 길 잃은 친구들을 챙기려고 노력했다. “소방관의 경우 머리를 자르고 난 뒤 필요한 서비스를 더 해주는 식으로 마음을 전하고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제가 소방관 형님들께 받는 게 더 많아요.” 

퓨마헤어 송근영 대표  ⓒ 사진 이현석 팀장
퓨마헤어 송근영 대표 ⓒ 사진 이현석 팀장

 

나에게 남은 보람
베푸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다는 그에겐 ‘보람’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는 기억도 어려운 친구들을 도운 것이다. 일로서는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머리를 잘라주면 만족스럽다.

“그 친구가 생각나네요. 딱 봐도 집을 나왔을 것 같은 친구를 데리고 와 육개장을 사 먹이면서 머리도 해주고 얘기를 들어준 적이 있어요. 아빠가 자꾸 때리고 학대해서 도망 나왔다고 했어요. 당시에는 저도 더 어리고 부당한 일을 바로잡으려는 열정이 강했어요.

그래서 그 친구의 부모한테 전화해 막말을 했죠. 그러다 그분들이 가게로 와 사정을 말하는데 이 친구가 이야기했던 게 거짓말이었어요. 그렇게 중간에서 이야기가 풀리고 아이를 집으로 인솔해가셨어요. 이후에도 그 친구가 몇 번 머리를 자르러 왔는데 어느 순간 인연이 끊겼어요.”

아쉬운 감정보다는 보람이 남았다.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집 나온 친구를 다시 가정과 연결해줬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이 어려운 친구들이 가정이나 사회와 다시 연결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해온 그는 무심하게 그간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에게 올해의 목표와 앞으로의 바람을 물었다. “잘 되고자 하는 건 없고 늘 해왔던 대로 하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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