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프랜차이즈협회 / (주)대대에프씨 조동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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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프랜차이즈협회 / (주)대대에프씨 조동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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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1.1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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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유통. 프랜차이즈 3박자를
완성한 25년 관록의 닭고기 박사


                 (주)대대에프씨의 <보스바비큐><꿀닭> 조동민 대표


업계의 현안들 적극적인 개입으로 해결사 평가받아
#1. 2010년 12월 중순, 치킨업계는 상당한 충격에 휩싸인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말할 것 없고 개인 점포들까지도 비장감이 감돈다. 12월의 매서운 찬바람은 을씨년스럽게 위기감을 더욱 부추기는 듯이 맹위를 떨친다. 대기업인 롯데마트가 전국 82개 점포에서 900g 내외의 프라이드치킨을 마리당 5000원에 판매하는 “통큰치킨‘ 행사를 공식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이 치킨 가격은 일반 치킨 전문점 판매가의 3분의 1 수준이다.
당연히 치킨업계로서는 앉아서 고스란히 날벼락을 맞을 처지다. 골목 상권의 영세 개인점포는 물론 프랜차이즈 치킨업계가 들고 일어났다. 특히 프랜차이즈 업계의 반발은 무척 거셌다. 이들 중에서도 대대푸드원 수장이자 프랜차이즈 수석부회장인 조동민 대표는 할인행사를 저지시키는데 앞장서서 활약했다.
단연 발군이었다. 동종업계 오너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이들을 대신해 토론회에 나가고 롯데마트 행사장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는 등으로 대중들에게 대기업의 횡포를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주력했다. 결국 롯데마트는 여러 가지 이유로 통큰치킨 행사를 중단하기에 이른다. 조 회장의 적극적이고 강한 문제 해결 능력이 업계에 단박에 회자됐다.

#2. 최악의 불경기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물론 가맹점들도 저마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기 일보직전이다. 본사는 본사대로 가맹점 개설이 안 돼 본부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고 가맹점은 가맹점대로 매출이 10~30%까지 떨어져 운영난을 겪고 있다. 이런 시기에 호황기에나 볼 수 있는 폭발적인 가맹점 계약을 맺고 있는 업체가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닭강정의 돌풍이 올해 들어 유난히 거세다.
그중에서도 <꿀닭>의 가맹점 오픈 속도는 질풍노도와도 같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군중이다. 한마디로 소자본 창업의 불루칩으로 부상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가격 슬라이스를 통해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꿀닭은 일단 창업비용이 저렴하다. 그래서인지 올해 3월에 첫 점포를 오픈한 꿀닭은 10월말 현재 140개점이 계약이 된 상태이며 오픈한 가맹점만도 90개점에 육박하고 있다.
불과 7개월 만에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프랜차이즈 <꿀닭>의 오너는 대대에프씨의 대표이자 제 5대 프랜차이즈 수장으로 취임식을 10월 말경에 가진 조동민 회장이다. 외식업 25년 내공의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음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할지 모른다.

#3 지난달 23일에는 프랜차이즈 협회 제 5대 회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700여명의 인사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취임식이 거행됐다. 대대푸드원의 조동민 회장이 신임 회장으로서 인사말을 하기위해 단상에 들어설 때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다.
그는 회원사들의 전원 찬성으로 추대에 의해 회장 자리에 올랐다. 회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15년이 걸렸다. 그는 프랜차이즈 협회의 창립 멤버이자 부회장으로 협회의 일을 맡아 해 왔다. 함께 협회를 설립할 당시의 멤버들인 윤홍근 BBQ 회장, 하이트비어플러스의 이병억 회장, 김가네 김밥의 김용만 회장 등이 차례로 회장을 역임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보좌해 왔다.
그처럼 협회의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이도 드물다.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15년이라는 세월동안 보여준 내공은 인내심과 끈기 그리고 확고한 목표의식이다. 주변에서 회장 자리의 승계라든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든지, 짜여 진 각본이라든지 하는 등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는 집념과 추진력은 오늘의 그를 만든 동인이다.

소탈한 이미지에 치밀한 추진력 돋보이는 CEO
프랜차이즈 제 5대 신임회장으로 취임한 대대에프씨의 조동민 회장은 소탈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업무적으로는 매우 치밀하고 적극적인 스타일이다. 그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은 협회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으로 해결사 역할을 도맡아 해왔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느낌에 걸맞게 외식업계와 프랜차이즈 산업 분야에서 마당발로 통한다. 가끔씩 쓰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에 솔직담백한 말과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색깔이 분명한 유형의 리더로 읽혀진다. 주변에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것도 그의 편안한 성격이 한 몫 한다.
그는 웬만한 CEO들에게는 없는 다양한 수식어들을 달고 다닌다. 일찍부터 사업을 시작해 크게 회사를 일으킨 경험도 있고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기 때문이다.
외식 육가공사업 25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의 오너, 국내 프랜차이즈 산업의 산 증인, 닭고기 분야에서 많은 벤치마킹의 대상이 된 인물,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의 최고 마당발, 인천 남동공단 내에 국내 최대의 육가공 공장을 가진 기업주, 종합식품기업을 꿈꾸며 전국에 육가공 공장을 7개나 운영해 봤던 야심가 등이 그것이다.
조 회장이 요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브랜드는 <꿀닭>이다. 올 3월 론칭한 꿀닭은 소자본창업 아이템으로 부부와 생계형 아이템으로서 각광받고 있다. 7개월 만에 140개의 가맹계약을 맺는가 하면 90개의 점포가 오픈한 상태다. 경기 악화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꿀닭의 인기 비결은 25년의 관록과 다양한 노하우가 빚은 작품이다. 그는 경기 상황을 미리 예측해 이미 5년 전부터 소자본 아이템을 꾸준히 준비해 왔고 그 대안으로 자신의 최대 강점인 닭을 매치시키는데 성공한 케이스다. 우선 꿀닭은 33제곱미터 매장 기준으로 창업비용이 3000~4000만원으로 예비창업자나 업종전환자들의 부담감을 줄였다.

꿀닭의 돌풍, 소자본에 일관서비스로 인기 폭발
그리고 조 회장의 최대 장점인 수직계열화에서 이뤄지는 일관서비스로 인한 경비절감을 이룰 수 있어 소자본창업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즉 도계장에서부터 제조, 육가공, 유통 등을 원스톱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경쟁업체보다 더 저렴하게 닭을 가맹점에 공급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짜여져 있는 것이다. 올해 말까지는 가맹점 150개가 목표다.
일반 닭강정 브랜드들이 갖추지 못한 수직계열화를 그의 회사는 이미 오래전에 완성시켜 놓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특히 25년 동안 몸담아 온 닭과의 인연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차별화된 메뉴를 만드는데 최적의 조건을 보유하고 있다. 꿀닭 매장에 들르게 되면 닭강정 뿐만 아니라 탕수육, 간장치킨, 콜팝 등의 인기메뉴도 즐비하다.
닭강정에 소비되는 원육에도 상당한 관심을 쏟았다. 종합식품회사를 꿈꾸는 그답게 원육에다 천연효소를 이용한 발효특허기술을 접목했다. 조리 시 사라지는 영양성분을 최대한 살려냄으로써 체내에 90%까지 흡수토록 했고 발효 시 몸에 안 좋은 요소는 파괴시켜 건강에 큰 도움을 주도록 구성했다.
무엇보다 원육의 고유한 맛을 살려내 소화 흡수에도 좋다. 그는 꿀닭 가맹점을 3년내 600개, 5년내 1000개까지 확대시켜 국내 최고의 브랜드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조 회장의 닭과의 인연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그가 닭 박사로 불린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27살 사업 시작해 30살에 닭고기 유통회사 설립해
국내 손꼽히는 닭고기 전문가로 불리는 조 회장은 1987년도인 30살에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 ‘터줏대감 양념통닭’이 대박을 터트리자 닭고기 유통회사인 ‘진한농축산’을 설립하고 승승장구한다. 그는 이후 제조, 생산, 가공, 유통 등을 갖춘 일관 서비스 체계를 갖춘 회사로 성장시켜가면서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게 된다.
프랜차이즈 업체로는 그가 거의 유일하다. 그는 현재 보스바비큐와 줄줄이꿀닭 등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모두 300여개의 가맹점을 관리하고 있고 인천남동공단에 2,400평 규모의 국내 최대 육가공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조회장은 27살 서울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으나 원하는 회사들마다 낙방하자 실망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취업보다는 창업쪽에 무게 중심이 옮겨갈 즈음 어느 날 한 호프집에서 오리고기에 대한 비전을 듣게 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기초지식만 가진 상태에서 친지와 주변사람들에게서 모은 돈 1,200만원을 들고 46.2제곱미터 공장에서 샘플을 만들어 영업을 다녔다.
무작정 덤빈 오리고기 영업은 6개월 만에 쓴잔을 마시고 돌아선다. 당시로서는 오리고기가 너무 앞선 메뉴였던 것이었다. 그는 그후  대중적이고 스테디셀러로 육가공업계에서 항상 인기가 좋은 닭 분야로 방향을 선회한다.
“한창 젊은 나이인 27살 때 의욕만 앞세우고 덤빈 오리 유통사업은 6개월 동안 한 건도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참담하게 끝이 났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결과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미적거릴 때 일찍 시작하면 승부가 빨리 날 것 같아서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큰 교훈을 준 첫 번째 사업이었다.”
이번에는 시장조사를 오리고기 사업 당시보다 10배는 더 철저하게 하고 다녔다. 또 다시 악몽을 꾸기 싫어서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성실과 열정으로 다져진 사업가다. 지금도 자신이 나태해질라 치면 초심으로 돌아가 이 두 단어를 반복해 되 뇌이곤 한다. 그의 오늘을 만든 언어들이다. 혼자서 명함 돌리고 영업하고 스티커 붙이며 1인 3역을 해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뛰었다.

오리 실패 후 닭으로 전환, 승승장구하며 1일 1,000만원 넘겨 
구두 뒤 굽이 닳은 지도 모르고 다닐 정도로 모든 열정을 쏟았다. 그는 어떤 일에 매달리면 전력투구의 정열을 보이는 스타일이다.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닭을 구입하겠다고 하는 업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2년이 지나자 1만 마리를 훌쩍 넘기고 매출도 1일 1,000만원을 넘기면서 유통업계에서 서서히 그를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는 여세를 몰아 30살에 가공 및 유통회사인 ‘진한농축산’을 설립한다. 2년 동안 닭고기 유통으로 승승장구하고 나자 회사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 또 다른 사업방안을 구상한다. 직접 치킨 가게를 오픈하고 이를 프랜차이즈화 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브랜드 ‘터줏대감 양념치킨’이 오픈됐다. 30살의 프랜차이즈 첫 사업이다.
3년 만에 가맹점이 120~130개로 늘어났다. 회사도 성장세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양념통닭에 이어 이번에는 춘천의 명물 닭갈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는 사물을 직시하고 핵심을 잡아내는 통찰력이 남다르다. 통찰력은 안목과 혜안이 빚어내는 초극의 영역이다. 그가 그걸 자신의 의지대로 펼쳐내고 있다. 양념통닭을 해 오면서 조미식품 분야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온 터여서 닭갈비 전문점을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1993년 33살에 새로 론칭한 ‘춘천본가닭갈비’도 대박 행진을 이어간다.
순식간에 가맹점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2년 뒤 사세확장에 힘입어 시흥에 5층짜리 육가공 공장을 직접 짓는다. 그의 나이 37살에 130개까지 가맹점을 오픈했다. 특히 춘천본가닭갈비는 점포가 165,2~ 330.5제곱미터 규모의 대형 매장들이라 식재 사용량도 늘어나면서 매출이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의 꿈이자 야망이었던 제조업으로의 진출을 위한 서곡이었다.

인천남동공단 2,400평 국내 최대 육가공공장 인수 뒤 사업 일취월장
조 회장은 계속되는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1999년 인천 남동공단에 국내 최대 육가공 냉장, 냉동 시설이 완비된 대지 5619.8제곱미터(1,700평), 건평 7933.8제곱미터(2,400평) 규모의 공장을 인수한다. 한 달에 90만 마리의 닭고기를  이 공장에서 가공해 시중에 공급할 정도로 규모가 엄청났다. 최첨단 시설들로 지어진 이 건물의 설비만 무려 15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 최대 육가공 공장도 1997년도에 론칭한 ‘바비큐보스(현.보스바비큐)의 폭발적 성장세와 육가공 거래 외식업체들의 증가로 2004년도에 이미 생산능력이 한계점에 다다른다. IMF를 거치면서 실직자들과 소자본창업자들을 위해 론칭한 ‘바비큐보스’는 본사에서 닭고기 제품을 1차 가공해 가맹점에 보내는 ‘쿨리스 원팩 시스템’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주방을 간소화하고 음식 대기시간을 단축해 인건비를 줄인 것도 인기 비결이었다. 바비큐보스는 2004년도 절정이었을 당시 가맹점수가 400개 점포에 육박했다.
이 모든 순조로운 진행은 완벽한 맞춤식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당시 육가공만으로 올린 매출액이 500억원을 넘겼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회사를 확장해 나간다. 2003년에 전주의 도계장을 인수하고 2005년에 남원의 돼지고기 도축장을 인수한다. 이어서 의령의 육가공 공장과 2~3곳의 공장을 이 시기에 인수한다. 그의 꿈이었던 종합식품기업으로 가기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2003년도부터 3년간 제조 육가공 신규 사업 분야에 모두 17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 무리한 투자로 인해 한동안 발목이 잡혀 어려움을 맞기도 했으나 오히려 내실 차원에서 회사를 재정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해 새로 거듭나는 상황을 맞는다. 그러면서 조 회장은 2004년부터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서기 시작한다.

꿀닭, 보스바비큐의 가파른 상승세......고기파동에도 신의 지켜
일단 중국쪽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중국 산동성에 식품공장을 마련해 만두라인, 냉동식품라인, 채소가공라인 등을 갖추고 내수에 전념하다가 최근에는 해외로 역수출하는 기업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 중이다. 현재 중국에는 17개의 보스바비큐 매장이 성업 중이다. 작년 12월 19일에는 싱가폴에 거점을 둔 Sea Union회사와 싱가폴을 비롯, 동남아 5개국의 마스터프랜차이즈 본 계약을 체결했다.
조 회장은 이를 교두보 삼아 본격적으로 해외진출을 할 방침이다. 이번에 진출하는 브랜드는 국내 숯불바비큐 시장을 견인해 온 ‘보스바비큐’로 론칭한 지 15주년이 된 관록의 치킨 전문점이다. 
그는 일반 육가공 업자와 달리 고기 파동이 닥쳐도 25년 동안 한 번도 주문을 중단하거나 밀리지 않는 신의의 기업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덕에 그와의 인연을 맺은 대다수 거래처들은 지금도 20여년을 함께 동반성장하고 있다. 그는 올 연말을 앞두고 한국프랜차이즈 제 5대 회장 취임, 꿀닭의 가파른 성장세, 싱가폴을 비롯한 해외진출의 가속도 등 3대 호재가 이어져 매우 고무된 분위기다.
만장일치로 추대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취임한 회장자리 못지않게 그의 사업 또한 순조롭게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프랜차이즈 관계자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덕철 발행인 사진 김도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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