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할 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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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할 수 있는 일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2.12.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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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한지>

1974년부터 문을 열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동양한지>. 박성만 대표는 한지의 역사 뿐만 아니라 시장의 역사와 인사동의 변천, 전통문화의 흐름과 계승까지 꿰뚫고 있는 장인이다. 그는 ‘30년 장사는 초짜’이며, 35년은 넘겨야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미쳐서 35년 한길을 걸어야 한 분야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단 것이다.

동양한지  ⓒ 사진 이현석 팀장
동양한지 ⓒ 사진 이현석 팀장

 

한지가 달라진다
“한지에는 털이 있어요. 일반 기계로 한지를 자르면 이른바 블랑케트가 나간다고 표현하죠. 전 한지의 털을 잡는 기술이 있어서 <동양한지>의 제품들은 전문가는 물론, 일반 고객들도 다루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동안 연구해온 결과죠.”

박성만 대표는 한지의 용도가 작품을 담고, 작품을 표현하여 작가의 의도를 전하는 새로운 작품세계를 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지를 담은 그림이 민화에서 서양화로, 이제는 사진으로 달라지고 있다. 그는 30여 년 전 사진가들의 고민을 접하면서 언젠가 한지를 이용한 사진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진을 프린트하면 질감도 다르고 표현 방식도 달라지며 전하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박 대표가 한지를 이용한 작업방식을 권하면서 지원한 사진가는 5, 6년 사이 크게 성장하여 외국에도 초청받아서 작품 전시회를 열 정도가 됐다. 박 대표는 한지를 사용할 수 있는 시장이 더 늘었다는 것이 반갑다. 전통문화는 보존도 잘 하고, 보전도 잘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후대가 언제든 찾을 수 있는 활로가 있어야 한다. 박성만 대표가 그 일을 하고 있다.

동양한지  ⓒ 사진 이현석 팀장
동양한지 ⓒ 사진 이현석 팀장

 

아버지에서 아들, 손자로 
전주에서 올라온 박성만 대표는 70년대 초반부터 가게를 운영했다. 아버지 대부터 하던 가업이라 아들도 대를 이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취직하겠다는 걸 붙들었다. 명문대 대학원까지 나온 아들은 “아버지, 제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 한지 한 장도 안 사봤어요. 찾는 사람이 없으니 수익성도 없는 사업입니다”라며 사양했다.

그런 아들에게 박성만 대표는 “골목상권에도 대기업이 들어오지만 한지는 아니다. **화학 등 대기업이 못하는 걸 우리는 한다. 예술의전당에서 문창호전을 할 때 불에 안 타는 종이를 주문했지만 우리만 할 수 있었다”라며 설득했다. 결국 아버지의 뜻을 따른 아들은 관련학과 석사,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여주 한지소재연구소에서 한지를 연구하고 있다.

아들이 공부해서 학위를 갖길 바라는 데는 배경이 있다. 언젠가 한지 포럼에 가보니 한지를 책으로만 접했겠다 싶은 교수가 강단에서 강연을 하고 있었다. 30년 이상 일해온 전문가라고 해도 학위가 있어야 나서서 강연을 하고 설득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 박 대표는 아들에게 공부를 권했던 것이다. 이제 부자가 함께 연구소에서 한지를 연구하여 특수 한지를 시장에 선보이고 있으니 박 대표의 바람에 가까워진 셈이다.

동양한지  ⓒ 사진 이현석 팀장
동양한지 ⓒ 사진 이현석 팀장

 

전통문화, 정부 도움 있어야 
“지금은 남의 나라에 높은 빌딩 보러 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전통문화, 그 나라 만의 것을 보려고 가는 거죠. 한지를 계속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지는 한중일에서 쓰는데, 중국 닥나무가 톤당 1,000만원이면 한국 닥나무는 톤당 1억원이 넘는다. 그 정도로 한국 닥나무와, 닥나무에서 나온 한지의 가치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한지의 전통을 이어가자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일본도 수백년씩 가업을 잇는 가게들이 많은데, 결국 정부의 도움 덕분이다. 무형문화재 한지장들도 판로가 없어서 박성만 대표가 사주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멈춤없이 정부에 조언을 하고, 스스로도 연구를 놓지 않고 있다.

끝까지 붙들고 있다보면 언젠가 보물이 될 것이란 믿음으로 혼자서도 한자에 대해 계속 연구해왔다. ‘어떻게 보면 미친 것’이라면서도 박성만 대표는 꾸준히 연구해왔고, 이제는 <동양한지>에서만 가능한 특수한지를 찾아서 제주도에서도, 외국에서도 찾아온다. 든든한 아들과 함께 한지연구소에서 한지를 연구하고 있는 박성만 대표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 아이디어는 지금도 샘솟고 있으니, 연구개발한 한지들을 적기에 맞춰 선보이는 작업에 더욱 공들이고 있다.

동양한지  ⓒ 사진 이현석 팀장
동양한지 ⓒ 사진 이현석 팀장

 

노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1. 대기업이 넘볼 수 없는 특별한 종이
2. 전통문화를 찾아오는 외국 관광객 등 일정한 수요
3. 박성만 대표의 특별한 기술


예비창업자에게 

장사는 바둑과 같습니다. 6급까지는 수월한데 5급 진급부터 힘들고, 이 과정을 극복하면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장사도 전문가가 되어야 하며, 그러자면 30년 이상은 운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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