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명물 <청담이상>
프랜차이즈로 대중화 길 열다
(주)청담이상
이정욱 대표
Profile
추진력과 디테일로 무장한 멀티플레이어의
화려한 이자카야 ‘매직쇼’ 날개 달다
이자카야 브랜드 <청담이상>의 이정욱 대표(43)는 20대 후반에 이미 대학로에서 점포 3개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는 아주 대단한 인물(?)이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심에 빠져 사업의 영역을 넓히려다 발목을 잡혀 나락으로 떨어진 뒤 심기일전으로 다시 정상궤도에 오르고 있는 중이다. 현실 안주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그는 사람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고 실현시키는 과정을 즐기며 도전한다. 강인해 보이는 외모만큼 추진력이 대단하며 일에 있어서만큼은 섬세하고 디테일한 면모도 함께 갖추고 있다. 아주 꼼꼼한 일처리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2008년도부터 이자카야 외식업에 뛰어들어 5년만에 매출 70억원대의 회사를 일궈놓은 수완이 좋은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가 이제 프랜차이즈 사업과 함께 매출 100억원대의 목표 달성을 눈앞에 놓고 있다. 오는 9월 전후로 오픈이 예정돼 있는 660㎡(200평) 규모의 압구정점을 기점으로 새로운 이정표를 다시 세워야 할지도 모른다. 직영점 위주로 가게를 운영하다가 방문한 고객들의 가맹점 개설 요구가 하도 심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결심하게 된 이 대표. 본인 스스로가 이자카야 가맹점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터라 가맹본부들의 맹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롱런의 브랜드로 자리잡을지 주목된다. 인터뷰 도중에 그는 오로지 가맹점이 잘 되기만을 바란다는 말을 끊임없이 했다. 결국 가맹점이 잘 돼야 본사도 잘 된다는 믿음에서다. 그의 행보에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
글 이덕철 발행인 사진 박세웅 팀장 케리커처 하도형
660㎡(200평) 규모의 압구정점 오픈되면 100억원 매출 ‘눈 앞’
과연 달성할 수 있을까. 그것도 매장 5개 가지고 말이다.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 초창기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목표다. 그런데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꿈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과 자신감이 더욱 부풀어 오르고 있다. 베일 속의 작품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올해부터 실루엣의 선들이 디테일하고 도드라져가고 있다. 추종적인 숫자 1억, 10억, 100억은 늘 과제였다. 이 숫자들과 마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들을 모질게 부려왔는가. 지금은 100억원이다. 지금 7부 능선에 와 있다. 고지가 얼마 안 남았다. 이를 악물고 온 지 5년째다. 의미 있는 미소가 입가를 스친다.
빵빵빵~~~~. 오는 9월 전후로 오픈이 예정돼 있는 660㎡(200평) 규모의 압구정 매장의 인테리어 시설을 감독하러 가는 길.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여기저기서 차 경적소리가 난리 나듯이 울려댄다. 서둘러 핸들을 잡고 쏜살같이 도산공원 인근으로 차를 몬다. 강남 청담동을 시작으로 서래마을, 양재동, 강북의 연희동, 휘경동 등에서 이자카야 브랜드 <청담이상>으로 바람몰이를 하며 연 매출 70억원대를 기록, 주점 분야의 스타로 떠오른 이정욱 대표(43)는 요즘 직영 5호점 구상에 여념이 없다.
직영점 4개, 가맹점 2개 등 모두 6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이날도 공사현장에 가던 길에 인테리어 생각을 하다가 출발이 늦어졌고뒤차들이 난리가 난 것. 이번 압구정에 오픈할 예정인 직영 5호점은 규모만도 기존 매장들의 2~3배가 넘는 규모여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요즘은 이 대표가 신규 점포를 오픈한다고 하면 마니아들이 대거 몰려드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5년 정도의 업력에 불과한데 그만의 독보적인 경영노하우는 어떤 것일까. 어떻게 해서 짧은 기간에 그렇게 급성장할 수 있었을까. 청담동 밤의 시계는 그의 <청담이상>으로 늘 25시를 가리킨다.
힘이 느껴진다. 정적이고 차분하고 은유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터프하고 직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날것 그대로의 모습에서 터보엔진의 기운이 전이된다. 추진력이 남다를 것이라는 단초를 제공하려는 것일까. 화법의 속도조절이 없다. 그렇다고 과장이나 포장의 ‘치기’가 덧칠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까발리는 정공법의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의 눈빛 조도는 길고 느린 속도로 그의 행동공간을 조율하고 아우른다. 열정은 향기를 품는다. 따라서 향기를 아는 기업가는 치열함을 존중한다.
터보엔진의 추진력, 섬세한 디테일의 그가 움직인다
그의 일관된 눈빛이 그걸 따라하고 있다. 단맛과 쓴맛을 경험한 이들의 행동반경은 마지막이 다르다. 결과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든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집념어린 몸짓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대신 말하고 있다. 그가 달성코자 한 100억원대의 매출이 성큼 그의 손에 쥐어져있을 것이란 예감이 드는 이유다. 이 대표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그는 해외 전지훈련을 가 본적이 없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스포츠 가운데 하나인 아이스하키는 그가 좋아하면서도 그에게 상처를 입힌 운동이기도하다. 이 상처는 훗날 그를 일벌레로 만드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아이스하키 운동부 선수들 전원이 가는 외국 전지훈련에 돈이 없어서 혼자만 빠져 본 기분을 아는가. 그가 그랬다. 그는 대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직업일선에 나선다. 마침 형이 대학로에서 호프집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지배인으로 일을 하다 외식업에 눈을 뜨게 된다. 손님접대, 메뉴, 서비스 등 기초적인 업무를 익히면서 가게와 장사라는 틀을 익혀나갔다.
3년 가까이 일에 매진했다.
그의 첫 사업은 의외로 빨랐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대학로에다 호프집을 차린다. 그의 나이 25살 때다. 고객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이 당시부터 달랐다. 그의 영업 원칙은 ‘박리다매’다. 저렴하게 많이 줘 고객들이 수시로 오도록 만드는 게 그의 장사 철학이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매장을 꽉 채운 고객들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인식을 젊은 시절부터 갖고 있었다. 25살 첫 장사에도 단골손님이 오면 하나라도 더 주려고 노력했고 섬기듯이 고객을 대했다. 경쟁이 치열한 대학로에서 자리를 잡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5살, 대학로 첫 가게에서 대박나 연달아 3개 오픈
군대 가기 전 형의 가게에서 일한 경험, 그만의 싹싹함과 눈썰미로 고정고객을 늘려나갔다. 호프집에서 팔지 않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음식점을 다니면서 벤치마킹했다. 호프집에 어울릴만한 메뉴로 재탄생시키는 재주가 남달랐다. 그가 재조명해 내놓은 안주는 일주일 지나면 곧장 다른 호프집에 등장할 정도로 감이 탁월했다. 장사가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115.5~132㎡(35~40평) 가게에 투자한 1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10개월만에 다 회수했다. 하루 100만원~15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호프집의 대박에 안주하지 않고 1년 후 두 번째 가게를 오픈한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끌던 레몬소주, 체리소주 등의 칵테일 소주방을 개업한다.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끔 서비스를 강화한 덕에 두 번째 가게도 성업을 이룬다. 가게에 손님들이 꽉 차 있는 걸 보고 행인들이 호기심어린 눈길로 들어오고 이들이 단골이 되어 다른 손님들을 데리고 오는 선순환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이 기세를 몰아 호프집을 하나 더 오픈한다. 가게가 3년 사이에 벌써 3개가 된 것이다. 그는 편안하게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못 견뎌한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움직이고 또 새롭게 일을 추진하는 걸 생리적으로 즐긴다. 오늘을 있게 한 성장 동력의 한 축이다. 20대 후반에 대학로에서 가게를 3개나 운영하는 아주 잘나가는 젊은 사장으로 등극한다.
“군대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이름으로 가게를 하나 오픈했다.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 편으론 장사가 안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내 가게를 하나 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래서 잠도 안자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가난해서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뛰었다. 그러다보니 많은 고객이 단골이 돼 주었고 대박이 나게 됐다. 그렇다고 거기서 그냥 멈출 수도 없었다. 너무 가게가 잘 됐고 또 고객들에게 잘해 줄 자신도 있어서 계속 오픈하게 된 것이다.”
무엇이든 안되는 게 없을 것 같았다. 그가 마음먹고 시작하면 다 잘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너무 일찍 성공의 단물을 맛봐서일까. 시련의 먹구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줄 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가게 3개를 운영하고 3년이 막 지날 무렵 서울 전역에 조개구이전문점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조개를 연신 구워먹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그는 조개구이 장사에 뛰어들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대로만 하면 역시 대박이 날 것 같았다.
조개구이, 스티커사진기 등으로 사업 확장······.
가게 모두 문 닫아
싸게 많이만 집어주면 쉽게 장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장사는 엄청 잘 됐다. 자리가 없어서 못 앉을 정도였다. 손님들이 가게를 꽉 채우고 남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월말 집세를 주려고 보면 자금이 늘 달렸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고 있던 것이었다. 조개를 제 값에 얼마만큼 주는지도 잘 몰랐다. 단골손님이 오면 그냥 막 수족관에서 꺼내서 주곤 했다. 남들이 봤을 땐 장사를 잘 했는데 인건비도 못 줄 정도로 엉망이었다. 8개월 지나니 빚만 3000만원에 이르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고민이 커져갈 즈음 이번에는 스티커사진기 사업이 창업의 유망 업종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는 또 다시 스티커 사진기 사업에 뛰어들었다. 조개구이전문점에서 손해 본 것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잘만 하면 수익이 크게 날 것도 같았다. 기계 한 대 가격이 1800만원하고 3000원 받아 1000원 남기는 장사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계 가격이 급락하고 필름 값도 계속 하락해 갔다. 새로 문을 연 스티커 가게와는 도무지 경쟁이 되지 않는 구도였다.
그는 여기서도 몇 천만원의 손실을 기록하고 문을 닫는다. 이 여파로 장사를 잘 하던 다른 가게들도 연쇄작용으로 폐업의 수순을 밟게 된다. 한 순간의 일이었다. 그는 망연자실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시 쓸어 담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조개구이 같은 경우 서울 변두리에서 집세도 안 내고 좌판 깔아놓고 하는 게 붐이었는데 대학로 한 복판에다 비싼 월세를 내고 하니 망할 수밖에 없었다. 스티커 사진은 시장 상황을 안 보고 너무 일찍 손을 댔다가 가격이 하락하는 바람에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지경에 몰린 경우다. 어린 나이의 자만심이 부른 실패였다. 어른들이 하는 얘기처럼 망하려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게 내 케이스였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망해서 얻은 교훈도 많다. 지금은 꼼꼼하게 케이스별로 3단계까지 점검하고 다진 다음에 실행에 나선다. 그 때 얻은 값진 경험이다.”
그는 방황했다. 대학로에서 잘 나가던 젊은 사장이 하루아침에 8000만원의 빚쟁이가 돼서 나가 떨어졌으니 갈등이 심했다. 그의 나이 서른 즈음이었다. 차를 처분하고 집도 상계동에서 의정부로 월세로 이사했다. 매일 술로 나날을 보냈다.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한심하고 한탄스럽기까지 했다. 술에 절어가고 있을 무렵, 어느 날 어머니가 들렀는데 까만 비닐봉투를 하나 두고 가는 것이었다. 5만원과 담배 한 보루였다. 자식이 망해서 늘 피던 담배를 못 필까봐, 그리고 용돈 하라고 두고 간 것이었다.
어머니가 내민 까만 비닐봉투, 5만원과 담배 한 보루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얼마나 불쌍하게 생각했으면 이랬을까 생각하니 서러운 감정이 복받쳤다. 다시 일어서야겠다.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젊으니까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는 은행부터 찾아갔다. 무슨 일이든 해서 은행 빚을 갚을 테니 제발 신용불량자만은 만들지 말아달라고 통사정했다. 그의 절절한 사정에 감복한 은행 측은 일단 지켜보기로 하고 유보시켜준다. 그는 막노동시장을 찾았다. 일단 아무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상황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데 남다른 능력을 보여 왔다. 일단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닥치는 대로 일감을 찾아 일했다. 그러면서 다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망해서 문 닫을 때에는 아는 체하지 않던 사람들이 다시 일하기 시작하니까 돈까지 빌려주기 시작했다. 장사를 잘 했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는 이렇게 해서 번 돈으로 매일 적게는 1만원 크게는 몇십만원씩 은행 빚을 갚아나갔다. 6개월에 걸쳐서 2000만원의 은행 빚을 모두 갚았다. 은행의 담당직원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설마했는데 실제 상황이 돼버린 것이었다. 조금씩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무렵 이제는 주변에서 장사를 같이 하자고 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그가 망하기 전의 장사 실력을 알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그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금을 대겠다는 사람이 나선다. 가게 운영은 이 대표가 하는 것으로 하고 다시 장사에 나섰다.
‘도시락’ 사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뚜껑을 연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단골 고객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매출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대박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자 자금을 댄 투자자의 간섭이 빈발했다. 처음에 약속했던 투자와 경영의 분리 원칙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기 시작했다. 고민스러웠다.
동업의 어려움과 솔로 영업의 무의미, 사회배우는 계기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더 이상의 가게 운영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손을 털기로 한다. 그리고는 중고자동차 판매 영업에 뛰어든다. 작은 형이 장한평에서 운영하던 가게에 마침 인원이 필요한 참이어서 쉽게 합류했다. 그는 사람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중요시하고 잘 관리한다. 운동할 때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는 늘 리더의 역할을 맡곤 했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설정에 능하고 부하직원들을 잘 다루는 편이다. 중고자동차 판매영업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또 하나의 직업이었다.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솔직함과 진정성으로 무장한 영업은 신뢰와 믿음으로 연결돼 단골 고객들을 상당수 확보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3년을 근무하면서 자기 장사를 다시 할 정도로 많은 돈을 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돈은 크게 벌었지만 재미를 잃었다. 중고자동차 영업은 혼자서 하는 일이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새롭게 만드는 과정을 무척 즐기고 좋아한다. 편하게 안주하는 생활은 딱 질색이다.
“대학로에서 장사를 접은 후 약 5~6년은 동업과 중고자동차 영업 등으로 사회를 한 수 배우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혼자서 하는 영업이 얼마나 재미가 없는지 등 또 다른 수업을 받은 셈이다. 나는 여건이 허락하는대로 또 다시 장사라는 바다로 나갈 준비를 늘 하고 있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방식이 그랬고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고 또 다른 내일을 사람들과 계획할 수 있어서 좋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분명 흥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외식업에 복귀하면서 이번에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선택한다. 미래의 청사진을 그린 데 따른 것이다. 아이템은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다. 그의 고객을 섬기는 듯한 마음자세는 오픈한 지 얼마 안 돼 청담동에서 인기 있는 술집으로 부상한다. 가맹점들 가운데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매장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의 사물을 읽어내는 힘과 전체를 조망하는 직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그의 첫 점포 입지 선정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장사를 다시 하려고 강남역 부근에 가게를 알아보던 중 마음에 드는 가게가 하나 나오자 그는 남다른 의문을 가진다. 이 가게를 하던 사람은 어디로 가서 영업을 하고 있을까. 수소문 끝에 청담동에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강남이 싫어서 청담으로 갔다는 얘기인데 나는 왜 강남에서 장사를 해야 하나 싶어 청담으로 가게를 알아보게 된다. 청담 1호점의 탄생비화다. 그의 선택은 적중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강남이 싫다고 갔는데 내가 왜 강남에서 장사하나’
청담의 비화
이자카야 가맹점은 장사가 무척이나 잘 됐다. 그는 여기서 자립할 수 있는 자금을 모은다. 가맹점을 하면서 본사의 불합리한 면을 많이 경험했던 터라 직접 이자카야 점포를 운영하는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그 첫 타자가 서래마을에 둥지를 튼 <청담이상>이다. 그는 일본을 왕래하면서 벤치마킹의 대상을 한정했다. 술과 안주로 제한한 것이었다. 분위기나 인테리어나 장식품 등은 별도의 창작물로 대체했다. 서래마을에 5억5000만원을 투자한 330㎡(100여평)의 <청담이상>은 예상을 빗나가 3개월 동안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한 달에 5000만원을 팔기가 쉽지 않았다. 서래마을이라는 특성을 분석하지 못한 탓이다.
청담이라는 지역은 외부인이 90%라면 서래마을은 10%에 불과할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시장을 잘못 읽은 것이었다. 잘못하다간 청담동 가게까지 타격을 받을까 싶을 정도로 저조했다. 가게를 내놓을 상황에까지 몰렸다. 3억원에 팔라는 주문까지 들어왔다. 그 즈음 부친이 오랜 투병 끝에 눈을 감게 된다. 그는 5년 만에 처음으로 장례식을 치르면서 5일을 쉬었다. 문상을 오는 조문객을 맞는 틈틈이 생각해 잠긴다. 만약 여기서 서래마을을 포기해 버린다면 앞으로 더 큰 점포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이를 악물었다. 돌아와서 일단 재정비에 들어갔다. 인원은 1/3을 축소했다. 그리고 파격적인 마케팅 공세를 벌였다. 수입맥주를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한 달간 판매를 단행했다. 주위 업소에서는 난리가 났다. 반응이 예상외로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점차 단골이 생겨나고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매출이 5000만원에서 1억원선까지 상승하기 시작했다. 가게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니까 호기심어린 고객들의 발길도 늘어났다.
그의 장사 지론은 이익이 남든 안 남든 가게는 사람이 ‘바글 바글’해야 한다는 것. 최고의 인테리어는 매장을 꽉 채운 손님들이라는 인식의 연장선상이다. 그리고 다음해인 2011년도 2월을 넘기면서 효자 매장으로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붙었다. 그는 이어 청담동에 <청담이상> 매장을 2월과 8월에 잇따라 오픈한다. 이 점포들도 오픈하자마자 2~3개월이 안 돼 매출 월 1억원을 넘기는 매장으로 급성장하면서 청담동의 명물로 부상한다. 줄서서 기다리는 이자카야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신발 벗는 문화, 매력적인 어두운 조명, 신선한 식자재 ‘성공의 3요소’
무엇이 고객들로 하여금 <청담이상>에 이토록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이곳에 들르면 일단 신발을 벗어야 한다. 하루 종일 신고 있었던 신발을 벗게 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고단함을 한꺼번에 벗어던진 것 같은 청량감을 안겨주고자 기획한 것이다. 이 대표는 오픈하는 매장이 있을 경우 직접 한 달간 손님들의 신발을 직접 챙겨 신발장에 보관할 정도로 고객을 섬기는 자세가 유별나다. 고객들의 신발냄새보다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의 마음에 더 감사해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곳 매장 안 내부는 다른 가게들과는 다르게 실내조명이 다소 어두운 편에 속한다.
그가 매장을 운영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분야 중 하나가 전등의 조도다. 고객들이 퇴근 후 기울이는 한 잔 술에 피로감과 술 맛을 동시에 녹여낼 수 있는 불빛을 찾아내 주는 게 그의 임무다. 따라서 그의 매장에는 조광기가 20개나 설치돼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은 시절부터 그의 철학이 되다시피 한 ‘박리다매’의 가격 전략이 고객들을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정상급 이자카야 매장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일본식 메뉴를 70~80% 수준의 가격에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담동의 다양한 이자카야 매장들 중에서 가격을 품질대비 가장 낮게 책정해 놓고 있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매장 문을 닫고 난 새벽 3~4시쯤 일주일에 3번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변함없이 새벽시장을 다녔다. 4년 동안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싱싱하고 양질의 식재를 고집한 데 따른 것이다. 새벽시장에 가면 또 다른 감동도 있다. 자신이 남보다 먼저 나와 일하고 있다는 뿌듯한 느낌도 받기 때문이다. 고객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이유다.
눈, 비가 오나 새벽시장서 신선한 식재료 직접 사 와
“우리 가게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손님들이 몰려오겠는가. 무엇이 다르니까 오긴 오는데 손님들은 사실 자신들이 왜 오는지 모를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신발 벗는 문화와 분위기 있는 어두운 조명 그리고 신선한 식재료가 아닐까 생각한다. 보통 이자카야는 밝은 편이다. 어두워도 1시간씩 기다렸다가 먹고 가는 이유가 이 모든 것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는 올해 1월에 오픈한 264㎡(80평) 규모의 직영 양재점의 활약이 눈부시다. 가게 오픈 당시 계획상으로는 지역의 특성을 감안, 약 6개월 후에야 월 1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판단했었으나 고객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오픈한 지 한 달 만에 목표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이곳에서 새롭게 시도한 점심 메뉴도 예상을 뛰어넘어 매장을 꽉 채우는 바람에 오히려 본사에서 당황할 정도로 인기상한가를 달리고 있다.
이 대표는 여세를 몰아 다른 5개 매장에서도 점심 메뉴를 새로 추가할 지를 놓고 고민하는 즐거운 상황에 빠져있다. 그는 올해 안에 2개의 직영매장을 추가로 더 오픈할 계획이다. 그 가운데는 그가 단기 목표로 설정해 놓은 100억원 매출 달성의 중요한 기록이 될 점포가 9월 전후로 압구정에 세워질 예정이다. 불도저에 비견되는 강력한 이 대표의 추진력으로 공사 중인 도산공원 부근의 직영 5호점인 660㎡(200평) 규모의 <청담이상>은 규모와 브랜드력 그리고 개성 있는 인테리어로 또 한 번 강남에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돼 관심이다.
무엇보다 이 점포로 과연 100억원대의 매출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가 주목을 끌고 있다. 최근 <청담이상>이 크게 인기를 끌자 가맹점을 내달라고 하는 지인들이 크게 늘어나 가맹사업에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상태다. 가맹점은 <청담이상>은 물론 이를 축소시킨 82.5㎡(25평) 규모의 <하루이상>을 제 2브랜드 모델로 삼을 계획이다.
가맹사업은 프리미엄급 <하루이상>의 수준에서 펼칠 것
프리미엄급 이자카야를 표방한 <하루이상>은 <청담이상>의 인기 메뉴들을 엄선해 30개 내외로 구성하고 있다. 음식조리를 잘 못하는 예비 가맹점주들을 위해서도 일주일만 본사의 조리 교육을 이수하면 곧바로 매장운영이 가능토록 했다. 물류도 신속·정확·품질을 위주로 하기위해 원팩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이 대표의 꿈은 면세점과 일본 오사카 중심에 <청담이상>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는 <청담이상>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오늘도 뜨거운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뒤돌아 나가는 그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가맹점 개설을 상담하러 온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을 받고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