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품목 갑질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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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품목 갑질 사태
  • 지유리 기자
  • 승인 2023.01.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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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지정 가이드라인 필요

프랜차이즈 본부의 필수품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상품의 통일성 유지와는 거리가 먼 일회용품과 공산품 등을 필수품목에 포함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해당 물품을 시중에서 구매했다는 이유만으로 가맹점의 가맹계약 해지 등의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필수품목이 가맹점주의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가맹법 개정안이 필요하다.  

 

2022년 가맹 분야 실태조사 결과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4일 가맹점을 대상으로 한 ‘2022년 가맹 분야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7월∼9월까지 3개월간 도소매·서비스·외식 등 21개 업종의 200개 가맹본부, 해당 본부와 거래 중인 1만 2,000개 가맹점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필수품목 항목에서는 가맹본부가 정한 필수품목 중 불필요한 품목이 있다고 답한 가맹점주가 56.7%로 집계됐다. 필수품목을 줄이고 가맹점주가 직접 구입하는 방식에 찬성하는 응답은 78.5%로 높았다. 또한 구매 강제를 강요받은 경험이 있는 가맹점주의 비율은 16.0%로 패스트푸드 업종이 많았다.

이 가운데 83.9%의 가맹점주는 구매 강제 요구거부로 인한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한편 특정 품목을 필수 구입 요구 품목으로 정해 유통 마진을 챙기는 ‘차액가맹금’ 방식의 가맹본부 비율은 60.4%를 나타냈다. 또한 가맹본부로부터 불공정거래 행위를 경험한 가맹점주의 비율은 46.3%로 1년 전보다 6.6% 증가했다. 더불어 가맹 분야 불공정 거래 관행이 개선됐다고 응답한 가맹점주는 84.7%로 2016년 64.4%보다 늘었으나 작년 86.6%보다는 소폭 줄어든 결과를 나타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가맹 분야 거래 관행 개선 및 정책 만족도가 2016년 조사 이후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여 그간 공정위에서 추진한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가맹점주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거래 관행 개선 및 정책 만족도가 전년 대비 다소 하락한 것은 코로나의 장기화 및 고물가, 고금리로 인한 경기둔화로 매출이 감소하고 비용이 증가한 경기상황에 따른 영향으로 분석했다.

더불어 공정위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불공정행위 경험 비율을 보인 업종 및 사업자에 대해 모니터링 강화, 제도개선 홍보 및 자율적 상생협력 유도를 통해 공정한 거래 질서를 확립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품 강매 금지 ‘가맹법 개정안’ 발의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5일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 가맹점에 특정 물품의 구매를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으로 필수물품 강매 부담으로 인한 가맹점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법안이다.  

필수물품 강매는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사이 분쟁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현행법상 필수물품의 범위와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관련 고시 역시 불분명하다는 점을 이용해 가맹본부가 필요 이상 물품의 구매를 가맹점주에게 요구하면서 발생하는 일이다.

이에 개정안에는 필수물품에 대한 정의와 강매 시 처벌 규정이 담겼다. 필수물품을 가맹본부의 상표권을 보호하고, 상품의 품질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품으로 제한하고 이를 넘어선 범위의 물품 구매 강요 시 공정위가 조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외에도 계약갱신요구권을 10년으로 제한한 조항을 삭제해 가맹점주의 대항력을 높였다. 일부 가맹본부가 특별한 사유 없이 계약 갱신 거절을 통보하는 방식으로 가맹점주에게 불이익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김 의원은 “필수물품 강매와 계약갱신요구권 기한 제한으로 인해 불거지는 가맹본부의 갑질을 막겠다는 취지로 이번 법안을 발의했다”라면서 “(법안이 통과되면) 프랜차이즈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필수품목 가이드라인 정비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가맹사업의 동일성 유지와 무관한 품목을 필수품목으로 지정하는 행위를 ‘구속조건부거래 행위’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 

국내 가맹사업의 경우 프랜차이즈 본부가 가맹점주에게 필수품목을 공급하는 대가로 단가에 이윤을 붙여 가맹금으로 받는 형태인 이른바 ‘차액가맹금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경우 충분히 외부에서 구매가 가능한 제품을 가맹본부를 통해서만 구매해야 하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

취지는 음식과 음료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필수적인 주재료를 통일해 모든 매장에서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고무장갑과 빨대, 물티슈, 휴지통, 냉장고, 오븐 등 판매 제품의 품질과 관련이 없는 소모품까지도 필수품목에 포함된 경우가 상당하다. 시중에서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도 가맹점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비싼 본부의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업계는 필수품목 목록을 법령으로 지정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업종별, 업체별로 필수품목에 해당하는 품목이 달라 일반적으로 규격화된 ‘필수품목’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치킨업계의 경우 치킨을 튀길 때 사용하는 식용유는 해당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데 가맹점주가 외부에서 구매한 식용유를 사용할 시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품질 저하는 곧 소비자 불만으로 연결돼 기업의 매출 타격과도 직결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필수품목 제도의 합리화를 통해 가맹본부와 가맹점주가 서로 협력하는 문화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지난달 5일 ‘가맹 분야 학술 심포지엄’에서 “필수품목 가이드라인을 정비해 필수품목 판단 기준을 구체화하고 가맹본부가 필수품목을 과도하게 지정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라면서 “가맹본부가 필수품목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법 규정을 정비할 필요가 있는지 자세히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최근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 따른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으로 필수품목 비용 상승분이 가맹점주와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현 상황이 국민경제에 부담으로 가중되고 있음을 우려했다. 이에 가맹본부가 필수품목을 과도하게 지정하는 것을 방지하고, 필수품목 제도가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필수품목 가이드라인을 정비, 필수품목 판단 기준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 위원장은 미국의 <던킨도너츠>, <버거킹> 등의 예를 들면서 과거 차액가맹금 중심의 사업방식을 채택했던 기업들 역시 오일쇼크로 인해 가맹점 영업이 어려워지자 가맹점이 원재료를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구매협동조합 설립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혁신적인 유통 구조를 통해 현재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공정위는 지금까지 추상적이었던 필수품목 요건을 구체화하고, 자율규제 사항이던 부분 역시 과징금을 부과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필수품목 비중이 높은 업종을 우선으로 가맹본부의 필수품목 운영실태를 점검해 구매 강제 행위를 엄격히 규율할 계획이다. 또한 기존의 외식업계 자율규약 등 연성 규범을 확대 시행해 이를 더 많은 가맹본부가 활용하도록 정책을 내실화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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