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 일상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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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일상을 담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20.09.16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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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보자기공예 김경희 작가

우연히 본 자수보자기 공예 작품에 매혹되어 고향을 떠나 서울로. 10년 돈버느라 고생했으니 서울 가서 놀다오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신나게 올라왔다. 공예학교 2년만 다니면 될 줄 알았는데 재밌어서 이것만 더, 이것만 더 하다가 10년이 지났다. 재밌자고 시작한 일이 업이 됐으니 인생이 바뀐 셈이다.

자수보자기공예 김경희 작가 ⓒ 사진 이현석 팀장
자수보자기공예 김경희 작가 ⓒ 사진 이현석 팀장

 

우연인 줄 알았는데 인연이었다. 오빠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김에 서울 구경 실컷 하고 오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좋은 전시회도 두루 찾아다니면서 즐기던 중 ‘한국전통건축공예학교’의 졸업 작품을 보게 됐다. 침선, 매듭, 옻칠, 나전칠기, 소목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 중에서도 자수보자기가 눈에 들어왔다. 촌스러울 거라는 예상을 엎고 우아하고 세련된 예술 작품들이었다. 격조높은 예술 작품에 매료된 김경희 작가는 고향 울산에서 보낸 10년 사회생활을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자수보자기 공예 작가로서의 첫 발걸음이었다.

 

그저 좋아서, 그저 재밌어서 
아르바이트로 해온 과외수업이 직업이 되어 10년 동안 돈 버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 또 다음 10년은 다양한 기법과 디자인의 보자기 자수 공예에 흠뻑 빠져 살았다. 공예학교는 1주일에 하루 3시간 수업이 전부였지만, 과제를 하다보면 하루가 훌쩍 가버렸다.

배움의 과정이 너무나 재밌고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어려운 줄도 몰랐다. 천연염색도 자수도, 고되거나 지루하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도중에 포기한 사람이 많았지만 김경희 작가는 그저 재밌고 좋아서 끝까지 할 수 있었다. 과제나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작품 만드는 과정이 ‘좋아서’ 밤샘도 힘들지 않았다.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시작한 지 10년쯤 되자 작가로서 독립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스승인 김현희 자수 명장이 국립중앙박물관 강좌를 맡아서 배운 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쳐보라고 소개해주셨다. 이어 선배 작가가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를 맡으라고 소개해줬다.

지방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라는 스승 말씀에 강원도농업센터, 충청도농업센터 등의 특강도 진행했다. 현재는 서울 도곡동 여성창업플라자에서 공방을 운영하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규방공예와 전통자수’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일상을 담은 소품
김경희 작가는 자신이 만든 작품으로 일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직접 지어 입고 나온 세련되고 품격있는 철릭원피스에는 우아한 야잠사 생명주 가방으로 멋을 더했다. 휴대폰에는 ‘삼재퇴치용’ 괴불이 앙증맞게 달려있다. 그이는 자수보자기 공예 작품을 일상에서 편하게 쓸 수 있는 예쁜 소품으로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직접 만들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있다. 공방 입점할 때 컨설턴트들이 한 조언을 귀에 담은 것이다.

“전통공예, 규방공예 라고 하면 선입견이 생기니까 바꿔보라고 하더군요. ‘일상사물에 어울리는 패브릭’같은. 약간 서운했지만 이해합니다. 아무리 노리개가 예뻐도 차고 다닐 한복을 평소에 입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일상 소품을 만들 때는 실용성과 함께 전통 공예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담아서 조화를 이루고자 합니다.”

컵받침, SNS 사진 배경용 매트, 현관용 반투명가리개 등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서울여성공예창업센터 더아리움을 비롯한 창업 마켓에서도 김 작가의 아이디어 상품은 돋보였다. ‘오리(鴨) 을 파자하면 갑甲이 되고, 이것은 장원급제를 의미한다’는 뜻을 담아 오리를 넣어 만든 합격부적 상품들은 큰 인기를 누렸다.

 

자수보자기공예 김경희 작가 ⓒ 사진 이현석 팀장
자수보자기공예 김경희 작가 ⓒ 사진 이현석 팀장

우리의 명품 
가치를 담은 예술 작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아트슈머’들이 늘면서 시장이 생긴 건 공예 작가들에게 반가운 일이다. 마음껏 뜻을 펼친 공예작품을 만들어도 되고, 대중 취향을 반영한 일상 소품을 만들어도 괜찮다. 김경희 작가는 저변 확대를 위한 아이디어도 연구했다. 

“뜨개실을 사서 샘플 보고 뜨개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자투리를 모아서 소품을 만들 수 있는 DIY키트를 만들 계획입니다. 설명서를 첨부하고, 만드는 방법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따라할 수 있도록 동영상도 만들 생각입니다.”

김경희 작가는 내년에 열 제자들과의 전시회도 준비 하고 있다. 2007년부터 하게 된 강의는 취직이란 뜻도 있지만 그보다 자수보자기에 담긴 아름다움과 가치를 많이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제자 한 명이 가족 한 명에게만 자수보자기의 멋과 의미를 전해도 많은 사람에게 알리게 되니까. 많이 보고 자주 접하면 작품을 알아보는 안목이 생긴다. 우리가 우리의 명품을 못알아보니 해외 명품을 더 찾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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