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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독서실 시공 능력 ‘스터디카페’ 황금기를 열다이제마스터디(주) 김영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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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26  09: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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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마스터디(주) 김영선 대표 캐리커처  원소정 작가

고급 원목, 도광판스탠드
완벽한 관리프로그램 3박자로 승부
이제마스터디(주)의 김영선 대표는 정직원으로 회사를 다니는 것을 싫어했던 그야말로 독특한 이력의 CEO다. 그러나 그의 행동반경은 문화교양 분야에서 만큼은 다재다능한 사람 중 하나로 평가받아왔다. 30세 중반에 200자 원고지 한 장에 5만원을 받고 기고문을 연재할 정도로 필력을 인정받는가 하면 방송에도 진출해 MC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교육방송에서 강의를 하면서 프랜차이즈 사업의 단초인 EBS영상독서실을 운영해 사업가로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읽게 된다. 200개 가까운 가맹점을 오픈시킬 정도로 능력도 보여줬다. 동시에 강남아줌마들이 일제히 수강신청을 하기위해 몰려들다가 계단에서 깔리는 사태까지 발생할 정도로 대치동의 논술강사로 유명세를 떨친 후 40세 중반에 드디어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변신하게 된다. 그는 아이디어맨으로 주변에서 유명하다. 독서실 책상의 고급 원목 사용,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도광판스탠드의 자체 개발, 완벽한 관리 프로그램 등은 경쟁업체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자랑이다. 현재 150여개의 가맹점이 있다.


50후반에 1.5류 인생의 대역전극 시동
1.5류 인생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2류는 아닌데 1류는 못 된 자존감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아련한 삶의 숫자다. 행간을 좀 더 들여다보면 눅눅한 기운과 회한이 결을 달리하고 서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숫자를 입에 올리는 일들이 잦아졌다. 그러나 분명 시작점은 1류였다. 서울신문, 동아일보, 한국일보, KBS, iTV, EBS 등에서 칼럼니스트, 방송MC, 구성작가, 논술강사 등으로 맹활약하며 한때 서정주, 이문열 작가 등과 좌담회를 가질 정도로 유명세를 떨친 적도 있다. 강남 대치동의 스타 논술강사로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을 끌어모은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다. 대학 시절부터 신문사 독자투고로 월급수준을 벌어들인 청춘시절도 간직하고 있다. 대교와 구몬 등에서 학습교재 집필위원으로도 참여했다. 그러나 다방면으로 재주가 너무 많아서일까. 한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뜨지 못했다. 그래서 나이 50대 후반을 맞으면서 못내 아쉬운 감정들이 밀려들곤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독서실 프랜차이즈 창업’ 분야에서는 정상의 위치에 있다. 일반 독서실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다양한 시스템은 학습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까지 받는다. 

최근 창업시장이 불경기 한파로 꽁꽁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비교적 매장과 직원 등의 관리가 손쉽고 비용이 적게 드는 독서실 창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제마 스터디클럽>이라는 브랜드명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이제마스터디(주)의 김영선 대표(57)는 실험정신이 가득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독서실에 접목해 창업시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다른 독서실에서는 볼 수 없는 고가의 원목 책상과 그림자가 없는 도광판스탠드 그리고 완벽한 운영관리 시스템 등은 프랜차이즈 가맹점 150여개를 오픈시킨 이제마스터디(주)의 작품들이다. 이제마스터디(주)의 독서실 인테리어 시공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업계 최정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김 대표는 어떻게 해서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여기까지 왔을까. 독서실 프랜차이즈로 과연 500개 내외의 가맹점을 구축할 수는 있을까. 최근 불어 닥친 독서실 창업열기를 앞으로도 계속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업계 리더 격인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이제마스터디(주) 김영선 대표 ⓒ권오경 포토그래퍼  

지략이 떠오르는 곡선의 조율 
날아다닐 것만 같은 호쾌한 언변이 인상적이다. 대화법도 막힘이 없다. 말을 빌리는 수사법이 안정적이고 편안하다. 그만큼 상대방의 심리를 조율할 줄 아는 힘이 엿보인다. 아이디어가 많은 이들의 특징은 깊은 생각보다는 다방면의 기능을 중시한다. 그에게서 지략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도 같은 맥락일까. 부드러운듯하면서도 간간히 드러나는 날카로움은 한 시절 움직였던 삶의 무대가 결코 녹록치 않았음을 내색하고 있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봤던 이들의 동선은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철학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직선보다는 곡선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은 유연성의 대가일 것이다.
김 대표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즈음인 29살 이전부터 동급생들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걷는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그는 학창시절부터 학비 마련과 용돈을 위해 국내 유명신문사에다 독자투고를 하기 시작한다. 당시는 학생들에게 과외 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해 놓은 관계로 아르바이트로 공부를 가르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신문사의 독자투고였다. 
친구들이 공사장이나 식당 등에서 일을 한 것과는 달리 일찍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 당시는 신문사에서 독자투고로 선정된 글에 일정의 원고료를 지불하던 시절이었다. 언론에 관심이 많았고 글도 제법 쓴다고 주위에서 평가를 받았던 그였기에 다른 아르바이트보다는 자신이 있었다. 또 시사분야나 사회 분야에서의 문제제기 역시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름 독특한 시각을 인정받고 있었다. 신문사에서 원고가 채택되면 1990년 전후 당시에는 3~5만원을 주던 시기였다. 한 달에 이렇게 해서 모은 돈이 거의 30만원 수준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당시 삼성그룹 신입직원들 월급이 50만원 내외였으니 그의 독자투고의 문제제기 실력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남달랐을 것으로 짐작된다. 

독자투고가 안겨준 다재다능의 발견
“과외가 금지되는 바람에 아르바이트를 원하는 학생들은 상당히 고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도 일거리를 찾다가 주위의 조언으로 독자투고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채택이 잘 안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원고가 신문에 실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잘하는 달은 거의 웬만한 월급보다 더 많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것도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투고를 하다 보니 신문사에서도 내 이름을 외울 정도였다. 여기에다 신문사들 간 경쟁이 붙어 지면을 많이 늘리다보니 글이 많이 필요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시작된 언론사들과의 인연은 그를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신문, 방송, 교재집필 등의 세계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기반으로 작동된다. 김 대표는 사회에 나와서도 취업 대신 신문사에다 기고를 하고 지낼 무렵 서울신문 고위 간부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한번 보자는 것이었다. 고위 간부는 그를 만나자마자 “독자투고만 할 게 아니라 여기에 와서 일 좀 해라”라고 하는 게 아닌가. 
김 대표는 객원기자 신분으로 서울신문사에서 외연확대를 위해 스포츠서울과 여성잡지 ‘퀸’ 등을 창간할 때 참여해 일을 하게 된다. 서울신문에서 그렇게 프리랜서 형식으로 일을 하고 있을 즈음 이번에는 동아일보 임원급에서 만나자는 전갈이 온다. 동아일보에도 칼럼을 하나 쓰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최연소 고정칼럼리스트가 탄생하게 됐다. 이곳에서 3년 동안 칼럼리스트로 활동을 하게 된다. 그는 이미 신문사들 사이에서는 아이디어가 많고 개성강한 투고자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의 원고료도 해를 거듭할수록 올라가고 있었다. 원고지 한 장에 5만원을 받는 거물로 성장해갔다. 지금도 웬만한 지명도와 필력이 없으면 받기 힘든 원고료다. 이렇게 서서히 언론과의 인연이 생성돼 가고 있던 즈음 그는 이번에는 신문사를 넘어 방송으로까지 진출하는 새로운 과정을 만난다. 한국일보에도 글을 연재한 이력이 있는 김 대표는 어느 날 우연히 KBS의 한국일보 출신의 감사를 하시던 선배를 만나게 된다. 그 지인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서는 그에게 새로운 일을 할 용의가 없냐고 묻는 것이었다. 

원고지 한 장에 5만원을 받는 거물로 성장해
이번에는 신문사가 아닌 방송사에서 어린이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회자로 변신을 하게 된다. 30대 중반에 그의 지명도는 탄력을 받아 점점 상승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즈음, 지금은 케이블 TV로 바뀌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지방에 있는 유일한 공중파 방송이었던 iTV(경인방송)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교양프로그램을 하나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이곳에서는 ‘책이야기’라는 프로그램으로 2년 가까이 진행을 하게 된다. 서점에 신간이 나오면 글쓴이와 그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로 국회의원, 대학총장 등 다양한 이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다. 
그의 얼굴이 알려지자 이번에는 청와대, 대기업, 국영기업체 등에서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특히 대기업 강의는 한 번 출강하면 강의료가 80~100만원대로 상당히 높게 책정돼 있어 거의 한 달 월급 수준이었다. 그가 주로 자주 갔던 곳은 현대엔지니어링과 LG그룹 등의 연수 강의였다. 
그즈음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중앙대, 서강대 특강을 하던 시절이기에 굳이 취업을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프리랜서로 일주일만 일해도 한 달 월급보다 많이 버는데 굳이 한 곳에 메일 이유는 없었다. 대학생 때부터 시작한 독자투고가 아예 직업으로 변신한 격이 된 것이다. 당시 원고지 한 장 가격 5만원은 상위등급 인사가 아니면 받기 어려운 액수였다. 게다가 점점 방송사에서도 섭외가 오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더욱 힘이 실렸다. 물론 중간에 정 직원으로 들어오라는 곳도 많이 있었지만 일단 월급이 적어 사양했다. 삼성에서 주는 월급의 7~8배를 버는 탓에 다른 곳이 눈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김 대표의 핸드폰에는 서정주 시인, 이문열 작가, 박희진 시인 등 쟁쟁한 인사들과 함께 30대 중후반에 신문사에서 진행했던 좌담회에 참석한 당시의 신문 자료를 촬영해서 올린 사진과 글이 영광스럽게 남아있다. 이분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웬만한 사람은 함께 자리를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지 않는가. 이처럼 그의 30대 중후반은 젊은 문필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시기였다. 김 대표는 신문 등에서 이름이 알려지자 이번에는 학생들을 상대로 한 교육출판사에서 ‘콜’이 들어온다. 

구몬 교재 집필과 대치동의 유명논술강사로 화제
대교출판사와 구몬 등에 프리랜서로 참여해 국어와 한자 관련 교재들을 집필한다. 그의 영역이 점차 다변화되고 활동 범위가 넓어져 가고 있었다. 다양한 일들을 홀로 하는 탓에 운전기사와 개인비서를 둘 만큼 무척이나 바삐 움직였다. 대기업 강의가 끝나자마자 인천 송도로 가서 iTV 방송을 녹화하고 또 집에 와서 혼자 원고를 써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는 지금도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면 괜히 식은땀이 나곤 한다. 한창 일로 지칠 때면 물건을 사거나 택시요금을 지불하고 난 후의 잔금을 힘들고 귀찮아서 받지 않을 때가 있을 정도였다. 지금 한참 붐이 일고 있는 한자 급수 시험 탄생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스타일이었다. 그가 iTV에서 책이야기로 2년 가까이 진행자로 있을 때 이번에는 교육방송 EBS에서 연락이 온다. 그의 나이 39살 무렵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국어와 한자를 가르치는 강사로 활동하게 된다. EBS는 그에게 젊은 시절 최고의 전성기를 가져다줌은 물론 사업 세계를 처음 눈뜨게 해 준 인생 2막의 공간이었다. 그는 강사로서도 인기가 있었지만 사업이라는 굵직한 분야에도 눈뜨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된다. EBS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 2년 뒤 로열티를 주고 <EBS영상독서실>이란 타이틀을 가져온 것이었다.  
그가 누구인가. 주변 사람들 누구나 다 알아주는 아이디어맨이 아닌가. 오죽했으면 그의 젊은 시절 닉네임이 ‘만수’(만가지 수를 가지고 있다는 뜻)였을까. 일종의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 위한 초석이었다. 대신 김 대표가 교육 강사로 있는 탓에 그의 부인이 대표로 나서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즈음 김 대표는 강사로서 절정의 시간을 맞게 된다. EBS뿐 아니라 그는 강남 대치동에서도 꽤 유명한 논술강사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프랜차이즈 첫 입문 EBS영상독서실
그의 수업은 늘 꽉 차 복도에서 들어야 할 정도로 인기였다.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엄마들이 대신 줄을 섰다가 밀려 계단에서 일제히 넘어지면서 일부가 밑에 깔리는 등 신문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EBS 방송 강사를 하면서 구몬과 대교 교재를 집필하고 강남에서 논술 강사를 할 때는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그가 계약한 이 영상독서실은 EBS교육방송을 제때 보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수백 개의 비디오를 구입해 놓고 시간이 나는 아무 때나 자유롭게 독서실을 방문해 비디오를 틀어보는 구성이었다.
2000년대 초 당시만 하더라도 교육방송은 드라마를 보듯이 시간을 맞춰서 대기하고 있다가 보는 식이었다. 따라서 학생들이 놓치는 경우가 많아 나중에 다시 찾게 되는 불편함이 있었다. <EBS영상독서실>은 이를 보완해주자는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일종의 독서실+비디오방 성격이었다. 이 시스템은 독서실 인테리어 시공과 비디오테이프에다 일정 부분의 마진을 붙여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방식이었다. 2년 동안에 무려 189개의 가맹점이 파죽지세로 오픈됐다. 그러나 잘 나가던 <EBS영상독서실> 프랜차이즈 사업도 얼마 못가 막을 내리게 된다. 그가 EBS 강사를 그만두면서 계약관계에 의해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EBS 방송강의를 그만두면서 영상독서실도 간판을 쓸 수가 없게 됐다. 2년여 동안 나름대로 가맹점들을 많이 만들어 주위에서는 꽤 괜찮은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거의 200개에 달하는 가맹점들을 다 놓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무엇보다 기존의 독서실과는 다른 차별화가 시급했다. 그러나 마땅히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아이디어맨으로 소문난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 이제마스터디(주) 김영선 대표 ⓒ권오경 포토그래퍼  

40세 중반 수강하는 학생 줄자 사업화에 관심
그는 이후 현업에서 논술 강사와 함께 신문칼럼을 계속 쓰고 그의 부인은 <EBS영상독서실>의 간판을 내린 후 일반 독서실 시공업으로 활로를 찾게 된다. 그러나 그 자신도 나이가 40대 중반이 되자 점차 여고생들의 강의 신청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젊고 실력 있는 총각 선생들한테로 여고생들이 옮겨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따라 같이 총각 선생들한테로 가는 게 아닌가. 점점 그의 입지가 좁아졌다. 
잘나가던 대치동 논술강사는 이제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막을 내리게 될 판이었다. 그에게 남은 나머지 카드는 한가지 밖에 없었다. 그나마 자리가 있는 ‘재수종합반’ 강사로 남든지 강의를 그만두던지 선택해야할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존심이 그렇게 수그러들 상황은 아니었다. 대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혼자 잘났다고 여기저기 설치고 다녔는데 나이가 들다보니까 이제는 제대로 된 회사, 즉 기업체를 하나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진하게 밀려왔다. 
1인 기업으로 한 시절 10억원 가까이 벌기도 해 봤던 그는 시스템이 갖춰진 기업을 만들고 싶은 생각에 빠진다. 그동안 부인이 운영해 왔던 독서실 사업을 체계적으로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었다, <EBS영상독서실> 같은 차별화된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누구인가. 아이디어맨으로 불렸던 ‘만수’아닌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놓고 가능성을 타진했다. 김 대표의 조부가 동양한의대 설립자였던 기억을 되살려 황토방 독서실도 검토해 봤다. 주변에서 안 된다며 극력 말렸다. 
그래서 다시 원점에서 찾은 아이템이 ‘혈액형 독서실’이었다. 그러나 이 안건도 전문가들의 부정적 견해로 중도 하차하게 된다. 의사들은 일제히 반대했다. 혈액형을 나누는 것은 자칫하면 인간을 차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며 대부분 거부의사를 보였다. 그의 장기 중 하나는 일처리 습관이 치밀하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반대하는 것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하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김 대표가 다음으로 뽑아든 아이디어는 ‘사상체질’ 독서실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아로마향 요법과 색채 심리학 요법을 함께 적용한 방식이었다. 역시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한의사들한테 자문을 구했다. 

남다른 아이디어 ‘사상체질’ 독서실로 부활
이번에는 매우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체질방은 효과가 있고 좋은 아이디어라는 평가였다. 그가 그렇게 원했던 차별화된 아이템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2006년 3월 <이제마 사상체질 독서실>은 그렇게 1년여 간 갖은 고생을 겪고 세상에 얼굴을 알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EBS영상독서실>을 운영하면서 차곡차곡 쌓아왔던 독서실 시공능력도 해를 거듭하면서 일취월장해 최고의 기술을 자랑할 정도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예비창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일반적인 독서실을 벗어나 일단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하나의 이벤트성으로 자신의 체질에 맞추어 방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신기했다. 학생들이 몰려들면서 창업자들의 만족도는 늘어나기 시작했다. 
혼자서 여러 방면으로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면서 움직였던 것에서 벗어나 기업을 꿈꿨던 그의 소망이 현실화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경쟁업체들과의 차별화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책상도 비용이 2~3배가 더 들고 소리를 흡수하는 기능을 지닌 원목으로 시공하는 방안을 채택한다. 업계에선 유일했다. 일반 독서실에서는 원목을 재단하고 남은 톱밥을 본드하고 으깨서 압축시킨 다음에 필름으로 코팅한 책상을 사용해 소리나 소음 등이 흡수되지 않고 튕겨 나간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7년 전부터는 글을 쓸 때 빛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직진하는 결과로 인해 그림자가 생기는 단점을 보완해 불을 켜고 글을 써도 그림자가 안 보이는 ‘도광판’ 스탠드를 개발, 손님들로부터 상당한 환영을 받았다. 운영 프로그램도 편리하고 세밀하게 구성해 예비창업자들에게 부담감을 크게 덜어주도록 했다. 

최고의 독서실 시공능력... 1000호점 가능할까
최근에는 대학 강의실 시설들이 빔 프로젝트 등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도난방지를 위해 다 잠궈 버리는 추세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대안으로 카페를 찾고 있다. 김 대표는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독서실도 세 가지 형태로 재편했다. 우선 기존의 <이제마 스터디존 독서실>은 전통적 개념의 독서실에다 카페 풍 라이브러리존을 혼합한 형태로 만들고 주로 주거 밀집지역이나 외곽지역 그리고 중소도시 등에 적합하게 구성해 놨다. 
다음의 <이제마 스터디카페>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에 맞춰 기존의 카페에 일대 혁신을 가해 최상의 자율학습 공간을 만들고 그룹 소모임 자리 등도 가미했다. 대도시 번화가, 더블역세권, 터미널, 백화점 인근, 비즈니스 밀집지역에 적합토록 했다. 마지막으로 <이제마 스터디클럽>은 스터디존 독서실과 스터디카페의 장점만을 섞어 취사선택한 구성으로 독서실 과밀지역에서 강세를 띠도록 조정했다. 
“외식업처럼 누구나 쉽게 창업을 할 수 있는 업종은 전문 분야에서 독서실 운영밖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면 타이어전문점이라든가 사진관이라든가 하는 업종 등은 모두 수년간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가능한 곳이다. 이제마스터디(주)는 3시간 교육만 받으면 그만이다. 또 직원들 이직으로부터 덜 시달리고 한 번 설치해 놓으면 추가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너무 깐깐하게 가맹점을 내주다보니 10년이 됐는데도 150여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폐점한 가맹점도 10년 동안 한 자리수도 안 될 정도다. 김 대표는 <이제마 스터디카페>의 경우 1000호점의 진출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서실 프랜차이즈 분야에서 독보적인 시공능력을 갖춘 이제마스터디(주)의 목표는 가능할 것인가. 김 대표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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