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눅> 차광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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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눅> 차광호 대표
  • 관리자
  • 승인 2013.12.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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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카페를 브랜드로 만들다

지하철 6호선 안암역 2번 출구를 나와 개운사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개성있는 카페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한적한 주택가를 마주하게 된다. 올해로 4년차를 맞은 <아눅>은 이곳에 둥지를 튼 1호 카페다. 차광호 대표가 카페 이름을 지을 때의 바람대로 어느덧 동네와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을 따뜻하게 밝히는 존재가 된 <아눅>.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종종걸음으로 <아눅>을 찾은 날,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이곳이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글 엄보람 기자  사진 박세웅 팀장

“인생이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국내의 내로라하는 한 프로모션 대행사에서 3년차 대리로 일하던 2007년 3월, 차광호 대표는 문득 퇴직을 결심한다.
“대학 때 전공은 항공전자공학이었지만, 학창시절 축제준비위원회를 이끄는 등 이벤트 분야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그 분야로 진로를 정하고, 국내 프로모션 업계 1위인 회사에 입사했어요.”
차 대표는 원하던 회사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쳤다. 하지만 3년차에, 다시 고민의 기로에 섰다. 적성에도 맞고 재미있었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기에는 업계의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당시 주변에 돌연사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하고싶은 일이 있는데, 그게 아닌 걸 하다가 뜻하지 않게 죽으면 무척 억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인생이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30세에 퇴사를 결정하고,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후 3년동안의 치열한 준비기간을 보냈다. 아이템은 카페지만, 커피보다는 스위츠나 다양한 카테고리의 먹거리가 있는 비스트로 카페 콘셉트로 정했다. 이를 위해 처음 1년은 공부하는 시간이 됐다.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제과제빵학원에 등록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하이서울 창업스쿨’ 과정도 이수하며 창업을 위한 탄탄한 기반을 쌓아갔다. 이후 1년은 실전 경험을 쌓는 기간이었다. 홍대, 삼청동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자처했다. 이때 맺은 인연은 훗날 그가 실제 카페 창업에 돌입했을 때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듬해에 그는 1000만원을 가지고 천안으로 내려갔다. 500만원으로 집을 구하고, 나머지 500만원으로는 트럭을 개조해 노점 장사를 시작했다. 이 장사를 통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상권분석까지 마친 그는 본래 천안에서 자리를 잡을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금 <아눅>이 있는 자리가 좋은 조건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순한 카페 아닌, 카테고리가 다양한 공간
당시 이곳은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주택가로, <아눅>이 이 인근에 자리잡은 최초의 카페였다. 차 대표는 이른 아침부터 나와 하루종일 주변을 관찰하며 유동인구를 살피는 등 철저한 상권분석에 들어갔다. 결국 ‘푸드’에 무게를 둔 카페로 콘셉트를 정했다. <아눅>을 준비할 무렵, 차 대표는 홀로가 아니었다. 제빵학원에서 인연을 맺은 아내와 함께였던 것. 다행히 서로가 가진 장점이 <아눅>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
“숙명여대 르꼬르동블루 출신인 아내는 요리와 베이킹에 강점이 있었고, 저는 커피에 강점이 있었죠. 또 아내가 센스가 있고 디테일한 것을 잘한다면, 저는 추진력이 있었어요. 그런 면들이 잘 맞아떨어졌어요.”
‘Fine food&Beverage’를 내건 <아눅>은 초기부터 요리에 중심을 뒀다. 오차즈케, 볶음밥, 파스타, 수제버거, 샌드위치 등 좋은 재료를 기본으로 한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다. 대학가 상권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높은 객단가였지만, 단골들은 점점 늘었다.
“가격대가 높았던 탓인지 고학년이나, 교환학생, 교수님 등이 주고객층이었어요. ‘비싸고 맛있는데 양 적은 집’으로 소문이 났죠.(웃음)”
그렇게 <아눅>은 손님들에게 믿고 찾을 수 있고, 안심되는 ‘브랜드’로 자리잡아갔다. “모두들 창업 3년이 고비라고들 하는데, 큰 고비가 없었어요. 아마도 초반에 자리를 잘 잡았던 덕분인 것 같아요.”
오히려 3년차가 됐을 때, 그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아눅>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샌드위치 스튜디오>라는 이름의 홈메이드 샌드위치 전문점을 연 것. ‘가볍고 건강한 한 끼’를 콘셉트로 다양한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판매해, 호응을 얻었지만 곧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샌드위치 스튜디오>가 추구했던 것과 상권의 괴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무렵 아내가 임신을 하기도 해 여러 가지로 조금 이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좋은 재료 사용한 웰메이드 푸드
아쉽게도 <샌드위치 스튜디오>는 문을 닫았지만, 차 대표의 실험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아눅>을 열고, 이를 바탕으로 <샌드위치 스튜디오>를 열었듯, 재미있는 무언가를 저지르기 위한 차 대표의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지금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예쁜 아이를 돌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처음 <아눅>을 열었을 때요? 무척 좋았죠. 늘 꿈꾸던 공간이었고, 손님들이 좋아해주는데다 수입까지 생기니까요. 아이가 생긴 지금은 이 공간이 가정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거라 생각해요.(웃음)”
지금은 요리의 중심축이 됐던 아내가 출산 후 운영에서 잠시 빠져, 메뉴는 샌드위치 위주로 정리한 상태다. 보통 차가운 샌드위치가 보편화 돼 있는 데 반해 이곳은 따뜻한 샌드위치를 위주로 한다. 햄치즈 치아바타 샌드위치(6000원), 베이컨 치아바타 샌드위치(6500원) 등 5가지 샌드위치와 빠니니, 볶음밥, 토스트 등 가벼운 끼니 위주로 구성돼 있다. 지금도 <아눅>이 추구하는 맛이 ‘파인 푸드(fine food)’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좋은 재료를 사용해,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푸드를 제공하는 것. <아눅>은 이러한 아눅만의 맛과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하려 했을 때 주변의 우려가 많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제가 성장한 것 같아요. 더 가지려고 하기보다는 하고싶은 일을 하며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그의 편안한 얼굴에서는 싱그러움마저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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