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으로 인생역전… 명장의 꿈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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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으로 인생역전… 명장의 꿈을 향하여
  • 창업&프랜차이즈 기자
  • 승인 2018.10.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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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피쉐프코리아 <빵장수단팥빵> 박기태 대표
▲ (주)피쉐프코리아 <빵장수단팥빵> 박기태 대표 ⓒ 사진 권오경 포토그래퍼

Profile

토탈 브랜드로의 새로운 걸음을 내딛다
(주)피쉐프코리아 <빵장수단팥빵> 박기태 대표는 15살에 제과업계에 입문해 대한민국제과기능장이 될 때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의 길을 걸어왔다. 2013년 제과기능장에 합격, 2014년 코리안마스터 챔피언쉽 3등, 2015년 프로제빵왕 최우수상을 받은 그는 2017년에는 프랑스 세계제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제과역사 100년사에 5등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제과기능장 프로제빵왕 국가대표로 불리는 그는 <빵장수쉐프>를 시작으로 <빵장수단팥빵>, <빵장수꽈배기>, <이탈리안쟈빠따>까지 다양한 제과브랜드의 수장으로 현재 직영점 8곳을 포함해 약 70여개 가맹점을 오픈한 프랜차이즈계의 큰손이기도 하다. 그는 가맹점주가 매장에서 직접 빵을 제조 및 판매해야 한다는 원칙을 기본으로 가맹사업도 전수창업처럼 이어나가고 있다. 박 대표 스스로가 그러했던 것처럼 점주들도 제과인으로서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도록 철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것.

최근에는 맥세스 컨설팅 교육을 통해 브랜드를 더욱 정교하게 다지고 토탈 브랜드로의 새로운 걸음을 내디디며 카페 론칭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달콤하고 탄탄하기만 했을 것 같은 그의 인생사에는 일곱 번의 사업실패와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 세 번의 자살시도가 있었다. 빵장수 박기태 대표를 만나 뼛속까지 제과인인 그가 빵과 함께 울고 웃으며 걸어온 성공 스토리를 따라가 봤다.

 

▲ (주)피쉐프코리아 <빵장수단팥빵> 박기태 대표 ⓒ 사진 권오경 포토그래퍼

15살 제과인으로 내디딘 첫걸음
피쉐프코리아 <빵장수단팥빵> 박기태 대표가 제과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5살 때였다. 공부를 하는 것보다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더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15살 어린 마음에 집을 나가 빵집에 취직하게 된다. 빵집이 숙박까지 제공해주던 시절, 박 대표는 당시 구미 시내에서 가장 크고 장사가 잘 되던 빵집 <비목당>을 찾아가 두 달간 일을 한다.

설거지를 하고 철판을 닦으며 빵과 관련된 기술은 크림 끓이는 방법을 배운 게 다였지만 그에게는 제과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후 부모님 설득으로 빵집을 그만두고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곧 학원 주변에 있던 영국빵집에 취업을 하고 6개월간 일을 한다. 이후에도 개인 빵집에 취업하는 등 꾸준히 빵집에서 일을 배운 박 대표는 20살이 되자 누나 부부의 투자로 <베테라 베이커리>를 운영하기도 했다. 

“일을 하는 순간이 행복했어요. 월급을 받으니 하고 싶은 걸 모두 할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재료 유통업도 해보고 식품회사에서 영업도 해보면서 오늘날까지 왔네요.”
박 대표는 24살이 되던 무렵 ‘남자가 주방에서 빵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재료도매상 일을 시작하지만 세 번 사업에 실패한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 빚을 내 빵집을 시작했지만 실패는 연이어 찾아왔다. 특히 2009년 38살 사업에 실패하던 순간에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던 그때, 박 대표는 처음으로 그동안의 실패와는 다른 ‘망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살 시도를 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대구의 유명 떡집에서 떡 만드는 기술을 배우며 떡집도 해봤지만 시도하는 만큼 실패도 함께 찾아왔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세 번 자살시도를 하면서 가정은 엉망이 되었다. 


 

▲ (주)피쉐프코리아 <빵장수단팥빵> 박기태 대표 ⓒ 사진 권오경 포토그래퍼

7번의 실패 후 돌아온 빵장수의 길  
7번의 사업실패 후 더 이상 빵집 일은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 과거 재료상을 할 때 원료를 제공하던 업체였던 신광식품에서 스카웃 제의를 해왔다. 신용불량자이던 시절이라 월급에는 압류가 들어왔지만 모든 걸 감수하고 묵묵히 일을 했다. 영업과 제품 개발 등 업무를 하는 틈틈이 제과기능장 공부도 했다. 
“마흔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돈도 많이 벌었지만 한이 맺힐 정도로 많이 망하기도 했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신광식품에서 근무하며 베이커리 현장에서 신제품 홍보 영업과 세미나를 통해 시장의 흐름을 느꼈다. 
“주변의 일을 알아봐주고 도와주는 게 진정한 영업이 아닌가 싶어 참 열심히 했어요. 친구의 부탁으로 가게 자리를 알아봐주는 일도 했는데 친구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서 한 달간 점포를 비워두게 되었어요. 기능장 공부를 하러 다니는 길목에 있었는데 그곳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지요.”
실패로 생긴 부채와 가족 부양비 등 이런저런 비용을 빼면 한 달 생활비 20만원으로 버텨야 했던 때였다. 그럼에도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지인들에게 100만원이라도 좋으니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때 제과제빵 기자재 업체 사장님, 인테리어 업체, 재료도매상 등에서 저를 믿고 한 번 도와주겠다는 말과 함께 도움의 손길이 왔어요.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신용불량자에 무일푼이었던 제가 가진 경력은 15살 때부터 제과업계에서 일을 해왔다는 것이 다였으니까요. 고마운 마음과 함께 인생 최고의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는 그렇게 2013년 제과업계로 다시 돌아왔다. 2013년 제과기능장에 합격하고, 2014년 코리안마스터 챔피언쉽에서 3등, 2015년 프로제빵왕 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7년에는 프랑스 세계제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제과역사 100년사에 5등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현재 ‘제과기능장 프로제빵왕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빵 하나에만 집중하고 있는 박 대표는 빵이 아닌 다른 길은 생각도 못하는 ‘뼛속까지 제과인’이었다. 
 

▲ (주)피쉐프코리아 <빵장수단팥빵> 박기태 대표 ⓒ 사진 권오경 포토그래퍼

맛과 신선도로 승부수를 던지다
7번의 실패 후 빵 장사에 대한 자신을 잃었다는 박 대표는 그럼에도 다시 한 번 힘을 내 제과인으로 돌아왔다. 2013년 8월경 대구시 중구 동인동의 비어있던 그 점포에는 <빵장수쉐프>라는 간판이 걸린다. <빵장수쉐프>에서는 눈 내린 황금빵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빵 ‘팡도르’만 제조·판매했다. 팡도르는 무게감이 있으면서 카스테라처럼 입에서 녹는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한다. 종합 빵집이 유행하던 시절 <빵장수쉐프>와 같은 단일 콘셉트를 가진 베이커리는 없었다. 당시 서울 홍대에 있는 빵가게에서도 <빵장수쉐프>의 팡도르를 100~200개씩 사갔다. 박 대표 스스로도 팡도르의 역사를 썼다고 자평할 만큼 그는 국내 제과 시장에서 팡도르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팡도르는 후배가게에 갔다가 처음 먹어봤는데 먹는 순간 감동하며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빵이에요. 빵가게 오픈을 준비하며 후배에게 제조법을 가르쳐달라고 해서 기술을 배워 한국인이 좋아하는 부드럽고 촉촉한 맛을 살리는 쪽으로 레시피를 응용하고 조정하면서 <빵장수쉐프>만의 팡도르가 태어났습니다.”

생우유 크림이 가득한 팡도르는 지금도 여전히 빅 히트 상품 중 하나. 세 가지 빵 종류로 장사를 시작한 <빵장수쉐프>의 매출은 다달이 뛰었다. 오픈 첫날 매출 30만원은 한 달 후 평균 일매출 150만원으로, 3개월 후에는 평균 250만원대를 유지하다가 1년 후부터는 일매출 평균 500만원대를 만들어냈다. 

박 대표는 <빵장수쉐프>를 오픈한 지 1년 만에 그의 두 번째 브랜드이자 대표 종목인 <빵장수단팥빵>으로 또 다른 빵집의 문을 열었다. 장에 갈 때마다 할머니가 사주시던 단팥빵과 흰 우유에서 착안, ‘어릴 때 할머니가 사주시던 단팥빵’을 콘셉트로 정했다. <빵장수단팥빵>은 오픈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주변에서 가맹점 요청이 들어왔다. 단팥빵은 어느 빵집에나 있는 기본 메뉴이지만 <빵장수단팥빵>의 빵에는 박 대표만의 빵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단팥빵의 팥은 씹지 않더라도 목으로 넘어가야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팥이지만 크림처럼 먹을 수 있을 만큼 입자가 고와야 한다는 의미예요. 팥이 혓바닥에서 끌리면 맛이 없거든요. 그런 맛은 전분을 빼내지 않으면 나지 않는데, 팥을 세 번 이상 끓이지 않으면 전분이 안 빠져나와요. 제가 팥을 직접 끓이면서 메뉴를 개발했습니다.”

과거 직접 재료상으로 일하며 익힌 지식으로 재료박사라고 불리는 그는 재료에 대한 이해 덕분에 메뉴개발도 남달랐다. 팥은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재료라는 생각에 빵 안에 팥과 함께 생크림을 가득 넣은 것도 그의 아이디어. 개당 2000원씩 하는 단팥빵은 서울에서도 대량주문이 들어올 만큼 인기가 높았다. 당연히 콘셉트를 흉내 내는 브랜드들도 늘었다. 

“처음부터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 메뉴를 개발했어요. 베이커리는 벤치마킹이 쉽기에 <빵장수단팥빵> 오픈 당시 재료 활용부터 베이커리 생산체제에서는 따라올 수 없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제조공정에서 베이커리에서는 구할 수 없고 기업만이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선택해 품목화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1일 판매에서 할 수 없는 방식과 포장 패키지 방식 등에서도 차별화를 뒀어요.”

▲ (주)피쉐프코리아 <빵장수단팥빵> 박기태 대표 ⓒ 사진 권오경 포토그래퍼

전수창업과 같은 가맹점 관리
박 대표는 <빵장수단팥빵> 론칭 때까지도 프랜차이즈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프랜차이즈 계획이 전혀 없던 터라 처음엔 전수창업으로 점포를 냈다. 첫 점포는 본점이 문을 연 지 두 달 만에 오픈했다. 이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직영점 8곳을 포함 약 70여개 점포를 오픈했다. 서울에서 제주도는 물론, 미국에도 점포가 있다. 전 가맹점주의 특징은 모두 제과·제빵을 했던 사람이 아닌 100% 제과초보자이자 창업초보자라는 점이다. 박 대표는 이러한 가맹점주들도 본인처럼 인생역전이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프랜차이즈이긴 하지만 <빵장수단팥빵>을 점주 역량에 따라 2배 이상의 매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의 빵집으로 만들었다는 것. 

박 대표의 가맹점 오픈 원칙은 가맹점주가 매장에서 직접 빵을 제조 및 판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단팥빵 장사를 하려고 해도 일을 그만두고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그는 사업은 주인이 하는 것이지 직원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마인드를 강조한다. 점주는 점포 오픈 전 본부에서 한 달 반 동안 기술 연수를 받아야 하며 그저 이름만 걸고 빵을 판매하려는 경우에는 가맹점 자체를 내주지 않는다. 가맹점 오픈 시에는 본부 매뉴얼대로 기술팀을 지원해 빵을 만들어보지 않은 점주들도 실수 없이 손쉽게 빵을 만들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기술을 습득시킨다. “주인이 점포에 상주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가게 운영이 잘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배웠다”는 박 대표는 “재료를 아끼지 않고 주인이 직접 빵을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어느 점포나 1년 365일 동일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빵장수단팥빵>은 ‘매일 굽는 빵집’이라는 콘셉트로 매장에서 직접 발효, 숙성, 성형, 굽기 등 제조에 집중하기에 타 브랜드와 신선도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낸다. 운영상 지키고 있는 철칙은 모든 빵은 하루 이상 판매할 수 없다는 것. 교육 시에도 철저하게 전달하는 사항이다. 재료의 마진율도 30% 정도로 높다. 박 대표는 “국내에서는 빵이 대부분 공장에서 납품되는데 <빵장수단팥빵>은 매장에서 직접 만들기에 신선도와 맛을 따라올 수가 없다”면서 “신선도와 고객 선호도가 높은 메뉴 구성으로 향후 최소 10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향후 <빵장수단팥빵> 점포에 카페를 적용시킨다는 계획이다. 직영점을 대상으로 진행한 시범사업 결과와 점주 호응이 높아 기존 점포에는 선택사항으로, 신규점포에는 원칙으로 카페형식 오픈을 예정하고 있다. 

<빵장수단팥빵> 이후 론칭한 <빵장수꽈배기>와 <이탈리안쟈빠따>도 인기가 높다. <빵장수꽈배기>의 경우 주전부리식 메뉴 구성으로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즐길 수 있는 페스트리 꽈배기를 주 메뉴로 하고 있다. 유럽스타일의 도넛과 쿠키 등을 주류로 계절을 크게 타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탈리안쟈빠따>는 카페 기능을 갖추고 치아바타 등 샌드위치류와 카페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메뉴 구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품목 구성이 자유로우며 준비된 제품 구성으로 대기 중인 고객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 (주)피쉐프코리아 <빵장수단팥빵> 박기태 대표 ⓒ 사진 권오경 포토그래퍼

맥세스와의 소상공인 멘토링 프로그램
박 대표는 현재 <빵장수쉐프>, <빵장수단팥빵>, <빵장수꽈배기>, <이탈리안쟈빠따> 네 가지 콘셉트 브랜드 제품들과 관련해 전국 및 중국 전역 투어 세미나를 하고 있다. 또한 맥세스컨설팅에서 각 브랜드를 정교하게 다지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9년 150호점 가맹점 오픈 및 2020년 300호점 가맹점 오픈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는 박 대표는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실적 업무에 배움을 적용시켜야 한다고 판단, 맥세스 서민교 대표로부터 브랜드 품목과 품질, 전략, 방향성, 기술력, 서비스, 마케팅에 대해 배우고 있다. 6개월간 매주 현장교육과 지식교육으로 커리큘럼을 완성해 나가면서 토탈 브랜드로의 새로운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 

“이러한 교육을 통해 <빵장수단팥빵카페> 론칭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맥세스를 만나 사업에 대역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교육을 통해 매출과 시스템, 생산성 향상 등 안정적인 이익구조로 다듬어지면서 소위 프리미엄급 브랜드로 환골탈퇴 중”이라고 설명한다.

박 대표는 맥세스컨설팅 교육을 통해 인생과 사업의 육하원칙을 배웠다고 말한다. 수익구조나 운영 시스템 등을 배우면서 기업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성장도 이루고 있다는 것. 법과 방향을 알고 나자 사업에서의 두려움도 사라지고 자신감도 올라가고 있다.

“그동안 법 없이 휴머니즘으로 프랜차이즈 운영을 해왔다면, 컨설팅을 통해 사업의 육하원칙을 배우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저의 판 자체가 바뀌고 있어요. 본부에서 전체 직원 교육도 이뤄지고 있어 사업 전반과 가맹점주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퍼지고 있어요.”
박 대표는 맥세스와 소상공인 멘토링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가맹점주 및 일반 소상공인의 매출 향상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제과인도 배워야 합니다. 기술교육, 경영마인드, 콘셉트 사업 등 소상공인이 힘들어하는 부분에서 저도 작게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흐름이 바뀌고, 법이 바뀌어가므로 앞으로도 교육은 지속적으로 받고 또 나누려고 합니다.” 

▲ (주)피쉐프코리아 <빵장수단팥빵> 박기태 대표 ⓒ 캐리커처 원소정 작가

박 대표는 현재 롯데푸드 기술자문위원과 신라명과의 기술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제과인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의 꿈은 제과기능장인이 되는 것. 국내 제과역사 100년 동안 15명의 명장만 배출됐을 만큼 명장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제과기능장인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2017년도 1월 프랑스 세계대회에 참석하고 지속적으로 제품 개발을 하는 등 공부를 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이런 박 대표에게 2018년도는 ‘태어날 때와 거의 같다고 비견될 만큼 중요한 해’이다. 15살 때부터 지금까지 빵의 제조 및 유통 뿐 아니라 재료까지 파악하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 해온 사업을 연말까지 안정화시켜 더욱 튼튼한 회사를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도 떳떳하게 살아왔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박 대표. 앞으로 회사가 10배 더 커지더라도 그 기본 마인드는 변함없이 챙겨갈 생각이다.

“저의 철학은 구정물에 발을 담그지 말자는 겁니다. 구정물이란 다름 아닌 욕심이에요. 저는 욕심내는 게 싫고 사람도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안 봅니다. 거짓말은 용서가 안 돼요. 그런 욕심과 거짓말이라는 구정물이 없는 정직한 빵장수의 삶을 사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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